<25> 5월 23일 ‘전의 상실’
조비오 신부가 설교하듯 말했다
“무기회수를 하지만 계엄사측에
다 반납하는 것은 아니오
계엄군들은 광주시민을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우리들은 평화적으로
2020년 03월 19일(목) 00:00
성연은 신도집인 동광한의원에서 하룻밤 묵은 뒤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적십자병원으로 향했다. 초파일 전날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성연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21일 초파일날은 증심사 신도회 간부들하고 불공으로 올린 떡과 과일을 노동청 앞까지 리어카에 실어 와서 시위하는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고, 어제 22일은 하루 종일 초파일 행사 뒷마무리를 하는 동안 공수부대 총칼에 광주시민이 죽어가고 있다는 신도들의 전화를 아침부터 받았던 것이다. 전화는 산그늘이 시나브로 접히는 늦은 오후까지 걸려왔다. 종무소의 전화 벨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종무소 직원은 초파일 연휴로 집에 내려가 버리고 없었다. 성연은 종무소 문을 닫기 직전에도 전화를 받았다.

“증심사지요?”

“네.”

“적십자병원입니다. 진각스님이 중상입니다. 그래서 전화드렸습니다.”

“알았습니다. 곧 내려가겄습니다.”

초파일 전날 충장로 송학탕에서 함께 목욕을 하고 헤어졌는데, 진각이 중상을 입고 병원침상에 누워 있다니 성연은 믿어지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었다. 관음전에서 천일기도하는 스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성연은 걸어서 학동삼거리까지 내려갔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멀리서 엠16 총성이 울렸다. 지원동 산자락에서는 중기관총에서 내뿜는 불빛이 보이기도 했다. 성연은 더 이상 시내로 들어가지 못했다. 한의원인 신도가 내일 아침에 가라고 만류했다. 할 수 없이 성연은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신도집인 동광한의원에서 하룻밤 잤던 것이다.

아침을 맞은 시가지는 조용했다. 문을 연 가게와 휴업 중인 가게가 반반이었다. 시민군들이 탄 트럭과 지프차가 이따금 오갔다. 계엄군이 시내에서 변두리 산자락으로 퇴각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성연은 어젯밤과 달리 다소 안심이 되어 남광주로 갔다가 광주천변 쪽으로 내려갔다. 적십자병원은 사직공원이 보이는 광주천변에 있었다.

진각이 적십자병원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만난 의사에게 말했다.

“진각스님 어디 있습니까?”

“진각스님이요?”

“아, 속명은 이광영입니다.”

그제야 의사가 병실을 안내해주었다. 다행히 진각은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성연을 보더니 눈을 한번 끔벅했다. 병실에는 증심사 스님 문현과 신도 한 사람이 문병 와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속가 부모님께 연락할라믄 전보라도 쳐야겄소.”

“고맙소.”

진각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진각의 속명과 나이, 속가 주소는 침상 머리맡 종이에 적혀 있었다. 진각은 허리에 총을 맞아 반신불수처럼 잘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도 입안에서 웅얼거릴 뿐 귀를 기울어야만 들을 수 있었다. 성연은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빌린 뒤 시 외곽으로 나갔다. 나주 가는 길로 나가서야 우체국을 찾아 진각의 속가가 있는 강진에 전보를 쳤다.

성연이 병실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모두 가버리고 아무도 없었다. 진각이 성연을 보자마자 말했다.

“성연스님, 내 부탁 하나 들어줄라요?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나를 절로 델꼬 가주씨요. 병신이 된 몸을 부모님께 보여주고 ?지 않소.”

“치료는 병원에서 받아야지 절에 가서 뭣헐라고요?”

“절 옆 토굴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죽고 ?소. 나 죽으믄 독경이나 해주씨요. 인간 몸으로 다시 태어나 부처님 제자로서 멋지게 수행을 한 번 해야겄소.”

부모가 병원으로 오기 전에 죽겠다는 진각의 말을 성연은 듣기만 했다. 극락왕생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증심사까지 앰뷸런스로 실어다줄지 의문이 들었다. 중환자이므로 의사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의사나 병원장이 반대했다.

성연은 담당의사에게 한 시간 동안 통사정하고, 병원장을 만나 하소연해봤으나 고성이 오가며 심한 언쟁만 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도청 상황실로 가서 사정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적십자지프차를 타고 다니면서 시민군들을 구하다가 다쳤기 때문에 차를 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보를 쳤으니 진각의 부모가 시골택시라도 타고 부랴부랴 달려올지 몰랐다. 그러니 진각이 원하는 대로 그 사이에 절로 데리고 가야 했다. 성연은 진각을 병실에 혼자 남겨두고 서둘러 도청으로 갔다.



간밤에 공수부대원 두 명이 밥을 훔쳐갔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문장우는 6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태봉마을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태봉마을 산자락에는 자연동굴이 2개나 있었다. 그러나 동굴 속에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이미 철수해 버리고 없었다. 학운동 시민군 소대본부가 있는 배고픈다리로 내려온 문장우는 본부 대원과 함께 늦은 아침을 먹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해온 아침밥이었다.

어느 새 햇살에 개울물이 반짝이는 오전 11시가 되었다. 문장우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여성신도 한 무리가 증심사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불공을 드리고 오는 5,60대의 불자들이었다. 여성신도들 틈에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청년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본부 대원이 문장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소대장님, 쩌그 수상헌 놈이 오고 있습니다.”

“나도 봤어. 모른 척허고 있드라고.”

문장우는 담배를 피우면서 젊은 청년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태연하게 배고픈다리를 통과하려 했다. 문장우는 그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순간에 그의 멱살을 잡고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의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이 튀어나왔다. 공수부대 하사였다. 뒤따라오던 사복 차림의 또 한 명이 계곡 쪽으로 도망쳤다. 문장우는 소대장용 자동소총으로 허공에다가 위협사격을 했다. 그는 공포에 질려 꼼짝을 못했다. 본부 대원들이 달려가 그를 잡아왔다. 그 역시 사복상의를 벗겨보니 사병군번이 나왔다. 민간인을 가장하여 시내로 도망치려는 하사관과 사병 공수부대원이 틀림없었다.

“니덜 아지트가 으디냐?”

“모두 지원동으로 넘어가고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수색 때 아무 것도 ?었그만. 니덜이 밤에 민가에 들어가 밥을 훔쳤어?”

“네.”

사병은 벌벌 떨면서 말을 못했고 하사가 말했다.

“이 새끼덜아! 니 상관이 도둑질허라고 시키디? 니덜 장비는 으딨어?”

“태봉마을 철탑 밑에 숨겨두었습니다.”

본부 대원들이 즉시 태봉마을 철탑으로 달려가서 그들의 장비를 모두 가지고 왔다. 배낭, 워커, 낙하하면서 소지하는 기관단총, 낙하산, 비상식량인 건빵 등이었다. 본부 대원들이 두 사람을 포승줄로 묶었다. 각조 조원들이 달려와 죽여 버리자고 흥분했지만 문장우는 그들을 달랬다.

“이 자들도 우리 동포니 죽이지는 맙시다.”

그때 마침 도청에서 기동순찰대 지프차가 왔다. 문장우는 노획한 장비와 함께 공수부대원 두 사람을 기동순찰대에 넘겼다. 기동순찰대 조장이 한 마디 하고 휙 떠났다.

“기동순찰대가 또 올 거요. 무기회수하러. 협조하든 말든 알아서들 하씨요.”

“형님, 뭔 소리요? 무기를 반납허라는 거요, 허지 말라는 것이요?”

동네 후배의 물음에 문장우가 씁쓸하게 말했다.

“도청이 두 파로 갈려서 지덜끼리 잘난 체 허고 있는 거야!”

“형님은 으떤 쪽이요?”

“총을 줘버리믄 우리 학운동 소대는 있으나 마나야. 총도 ?이 어처께 싸울 수 있나. 그런디 총을 갖고 있는 것도 불법잉마. 국가가 우리에게 총을 내준 적이 ?응께 말여.”

“탈취헌 총을 무작정 갖고 있는 것도 문제그만요.”

“뽀쪽헌 수를 한 번 찾어봐. 총기를 불법으로 소지헌 죄로 처벌받지 않을라믄.”

그러나 학운동소대 각조 조원들은 총기반납 문제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찬반의견이 1대2로 갈리었다. 그러는 사이 오후 1시 30분쯤이 되자 총기회수반 지프차가 배고픈다리에 와서 멈추었다. 김춘국은 나서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제2 생명인 총기를 반납한다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요.”

무기회수반 반장이 김춘국을 설득했다.

“무기가 너무 많이 돌아댕긴께 사고 날 위험이 크요. 무기를 회수한 뒤 체계가 잽히믄 다시 분배하겄소.”

“당신이 공수놈덜로부터 내 생명을 책임지겄소?”

그때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지프차에서 내려왔다. 조비오 신부였다. 그가 설교하듯 말했다.

“무기회수를 하지만 계엄사측에 다 반납하는 것은 아니오.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기회수를 하는 거요. 총이 있어야만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오. 계엄군들은 광주시민을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정신만 살아 있다면 우리들은 평화적으로 계엄군들을 굴복시킬 수 있소. 하느님은 결코 광주시민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오.”

조비오 신부의 입술 한쪽은 피가 맺혀 있었다. 무기회수반 지프차를 타고 다니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시민군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학운동소대원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더구나 지원동 쪽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 총성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엠16과 카빈소총 총성이었다. 문장우가 나서서 무기회수반 반장에게 말했다.

“두어 시간 뒤에 다시 와보씨요. 결론을 내려주겄소.”

“반 승낙헌 것으로 알고 다시 오겄소.”

문장우의 생각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는 쪽이었다. 총이 없다면 시민군은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공수부대가 지근거리에 있는데 총 없이 지역방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자신은 소대원들이 현명하게 결정하도록 찬반 양쪽의 입장을 들어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총기를 반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약속대로 무기회수반 지프차가 오자 학운동소대원들이 모두 총을 내놓았다. 반대하던 한 소대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학운동소대 시민군은 요로코름 해산해뻔징만요.”

문장우는 소총 1백여 정과 실탄을 싣고 무기회수반 지프차를 타고 도청으로 갔다. 정문 수위실 앞에 회수한 총기 몇 백 정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도청 상황실에서 나온 30대로 보이는 한 명이 말했다.

“그동안 수고하셨소.”

“총기를 회수해가지고 어처께 하겄다는 거요?”

“상황이 바뀌면 다시 지급하겄소.”

“무슨 상황이요?”

“계엄사측과 협상 중이오.”

“당신들 원래 직업이 뭔지 모르겄소만 예비군 소대장인 나는 당신들과 입장이 다르오. 도청에서 질서유지를 허는 것은 좋은디 내가 전술적으로 볼 때는 틀렸소.”

“뭐가 틀렸다는 말이오?”

“도청에만 시민군이 있어봐야 계엄군이 다시 진입헌다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당헐 수밖에 ?소. 계엄군 주둔지나 숙영지 부근에 잘 훈련된 시민군이 방어를 허고 있어야 막을 수 있소. 근디 지역방어를 허는 시민군의 총기를 회수허고 있다니 문제가 많소.”

“충분히 알았소. 너무 걱정 마씨요. 그래서 기동순찰대를 기동타격대로 돌리고 있소.”

문장우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예비군 훈련 때 가끔 만났던 박남선이라도 볼 요량으로 상황실에 들렀지만 그는 순찰 나가고 없었다. 상황실 한쪽에는 아침에 넘겼던 공수부대원 한 명이 취조를 받고 있었다. 문장우가 넘긴 공수부대원은 두 명인데 한 명씩 불러 취조하는 듯했다. 조사부장이 된 김준봉이 형사이듯 녹음기를 틀어놓고 다그쳤다.

“너무 떨지 마씨요. 당신도 대한민국 국민인디 죽이기야 허겄소? 군인이야 명령에 살고 죽지 않소? 당신은 명령에 복종한 거 뿐인께 걱정허지 마쑈. 상관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광주로 내려왔소?”

“광주에 빨갱이들이 득실거린다고 들었소. 또 광주시민들이 난동을 부리니까 사상자를 많이 내더라도 치안회복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소.”

“어찌허다 잡혀왔소?”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소. 조선대 뒷산으로 철수할 때 잠이 들어 버렸소.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부대는 이미 철수해버리고 없었소. 그래서 낙오자가 됐소.”

김준봉은 녹음기가 말썽을 부리자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공수부대원의 말을 녹음해두기 위해서 김준봉이 그의 이모 집에서 가져온 녹음기였는데, 구식이어서 성능이 좋지 않았다. 문장우는 김준봉의 취조를 잠깐 지켜보다가 상황실을 나와 금남로를 걸었다. 총기를 반납해버렸기 때문에 학운동으로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학운동시민군 소대장으로서 할 일이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소대원들도 뿔뿔이 흩어져버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하천 건너편인 지원동으로 가서 싸울 사람도 있을 터였다.

문장우는 아는 가게로 가서 자전거를 빌렸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문장우는 시내 밖의 바람이나 쐬려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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