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적 가치’와 ‘지역 정체성’을 담다
[문화광주, 컬렉션을 블랜딩하라] 광주시립미술관
드로잉·판화·회화·한국화·조각·뉴미디어 등 5105점
‘금강산도’ ‘미완성 색필산수’ 등 허백련 작품 26점 소장
오지호 ‘모란’·천경자 ‘드로잉’ 등 작고 작가 작품 눈길
재일한국인 사업가 하정웅 20년간 2600여점 작품 기증
부산·대구·대전 공립미술관 순회 ‘하정웅 컬렉션’ 호평
2020년 03월 10일(화) 00:00
마리 로랑생 작 ‘머리에 리본을 맨 소녀’
김환기 작 ‘무제’
미술관 소장 작품은 미술관의 경쟁력이자 정체성(Identity)이다. 또한 미술관이 자리한 도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광주 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은 프랑스 여성작가 마리 로랑생의 ‘머리에 리본을 맨 소녀’(1930년대)를 비롯해 마르크 샤갈의 ‘파리의 기억’(1928년작),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상’(1962년작), 웬디 워홀의 ‘모택동’(1972년작)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보석같은 ‘하정웅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의재 허백련과 오지호 화백, 수화 김환기 등 한국 미술사를 빛낸 우리 지역 작가들 작품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담은 판화 등 민중미술 작품, 재일 한국인 1세대 작가들의 작품들도 독보적이다.

이응노 작 ‘군상’
◇2019년 12월 현재 작품 5105점 소장=광주 시립미술관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소장품은 미술관 예산으로 구입한 ‘순수소장’ 2502점과 동강 하정웅(재일한국인 2세 사업가) 기증 작품 2603점 등 모두 5105점. 특히 하정웅(81) 광주 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 ‘메세나’(Mecenat·개인이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 정신에 따라 1993년부터 6차례에 걸쳐 기증한 작품들이 전체 소장품의 51% 가량을 차지한다.

광주 시립미술관은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우리지역 작고·원로작가의 작품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담아내는 현실참여계열 작가 작품 ▲우리지역 출신 중견 및 청년작가의 작품 ▲광주 시립미술관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작품 등 ‘미술사적 가치’와 ‘지역 정체성’에 부합하는 다양한 소장품을 확보해왔다. 2018년에 총 116점(일반수집 34, 청년작가공모 24, 아트페어 35, 기증 23점)을, 지난해에는 총 134점(일반수집 66점, 아트페어 37점, 기증 31점)을 각각 소장품 목록에 추가했다.

소장품 수집은 미술관 학예연구사들의 수집작품 추천 또는 작품 공고 후 미술작품 수집 심의위원회(7명)와 작품가격 심의위원회(5명)를 거쳐 결정된다. 또한 지역출신 작가와 유족들의 작품기증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맞춰 광주 시립미술관은 지난해 1월 기증문화 정착을 위해 ‘미술품 기증 및 기증자 예우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바 있다. 수장고 공간이 한정돼 있어 기증작품 모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장품은 수장고내에서 미술품에 적합한 온도(18℃±5℃)와 습도(50%±10%)에서 보존된다.

광주 시립미술관 소장품은 홈페이지(artmuse.gwangju.go.kr) ‘소장자료’ 항목에서 손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총 5105점의 소장품을 작품 유형별로 살펴보면 드로잉·판화 1345점, 회화 2125점, 한국화 567점, 사진 482점, 조각 322점, 공예 109점, 서예 105점, 뉴미디어 37점 등이다.

한국화의 경우 의재(毅齋) 허백련 작품은 1920년대 금강산을 다녀온 후 제작한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진 10폭 병풍 ‘금강산도’와 타계하던 해인 1977년 작 ‘미완성 색필산수’ 등 총 26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적 인상주의 회화의 거목인 오지호(1905~1982) 화백 작품은 1974년 유럽을 여행하며 그린 유화 ‘함부르크항’(1977년 작), ‘모란’(1966년 작) 등 7점이 있다. 또 양수아(1920~1972)의 추상화 ‘무제’(1971년 작), 배동신(1920~2008)의 수채화 ‘무등산’(1960년 작), 천경자(1924~2015)의 ‘드로잉’ 작품 등 한국미술사를 빛낸 작고작가들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우환 작 ‘From point No202’
◇동강 하정웅, 컬렉션 20여 년간 광주에 기증=광주 시립미술관은 지난 1992년 8월 1일 전국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운암동 광주 문화예술회관에 딸린 미술전시장 형태로 건축면적 2176㎡ 규모의 건물을 지었지만 정작 미술관 등록에 필요한 최소한의 작품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역의 중견·원로작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같은해 11월에 고 임병성(한국화), 고 오승윤(서양화), 황영성(서양화), 노의웅(서양화) 등 지역미술인 11명과 공무원 3명으로 ‘광주 시립미술관 작품수집위원회’를 구성해 전국 미술인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수집했다. 2014년 펴낸 ‘광주 시립미술관 20년사’에는 “이러한 수집활동으로 허백련, 오지호를 비롯한 전국 주요 미술인의 작품 126점을 기증받아 1992년 11월 2일 광주 시립미술관 상설 전시장을 개관하게 되었으며, 그해 12월 ‘박물관·미술관법’에서 요구하는 행정절차를 갖추어 명실공히 전국 첫 공립 미술관으로 등록하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재일한국인 2세 사업가인 동강 하정웅이 이듬해 5월, 고 임병성·오승윤 화백의 안내로 광주 시립미술관을 방문한다. 이때 광주 시립미술관의 속사정을 알게 된 그는 1993년 7월에 1차로 212점의 작품을 기증하게 된다. 이후 2차기증 471점(1999년), 3차기증 1182점(2003년), 4차기증 357점(2010년), 5차기증 80점(2012년), 6차기증 221점(2014년) 등 꾸준하게 광주에 작품을 기증해오고 있다.

그가 기증한 2600여점의 ‘하정웅 컬렉션’은 전화황과 곽인식, 송영옥, 조양규, 문승근 등 재일한국인 1세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피카소, 샤갈, 미로, 달리, 앤디 워홀, 벤 샨,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이우환과 같은 유명 작가까지 폭 넓다.

김희랑 광주 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광주 시립미술관 20년사’에 게재된 ‘하정웅 컬렉션의 현황과 연구과제’에서 ‘하정웅 컬렉션’의 성격과 가치를 크게 ▲시대와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적 증언으로서 미술’ ▲사회적·정치적으로 불우하고 소외된 자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을 위로하는 ‘기도의 미술’ ▲예술활동의 궁극적 목표이자 역할이기도 한 ‘행복을 주는 미술’ 등 3가지 범주로 묶었다.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하정웅 컬렉션은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로 압축할 수 있다.

광주 시립미술관은 다양한 소장품을 수집한 후 ‘신소장품전’을 열어 일반에 공개하는 한편 기획전시에 활용하고, 국·공립미술관간 네트워크를 통해 작품을 순환 전시하고 있다. 각 미술관의 대표적인 소장품 교류는 전시의 질을 높이고, 작가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하정웅 컬렉션’으로 부산과 대구, 대전 등 공립미술관 순회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 ‘하정웅 컬렉션’은 지난 2017년 3월 새롭게 개관한 광주 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꾸준히 선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8년 7~8월에는 세 작가의 민중 판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전시가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고(故) 오윤과 일본 도미야마 다에코, 독일 케테 콜비츠(1867~1945)의 판화작품이다. 이 가운데 ‘씨앗은 짓밟혀서는 안 된다’와 ‘자화상’ 등 콜비츠 판화는 일본 오키나와에 자리한 사키마(佐喜眞)미술관(관장 사키마 미치오) 소장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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