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우정+문화공간+서원’ 꿈 꾼 12년 역사 갈무리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
이재성 지음
2020년 02월 21일(금) 00:00
언젠가 서울 길담서원(대표 박성준)에서 피아노 토크를 진행하게 된 피아니스트 조현영씨가 참 의미있는 공간에서 연주하고 강의한다며 뿌듯해 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길담서원은 그런 곳이다.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을 넘어, 사람들의 정신을 살찌우고 다양한 모임을 통해 서로 성장해가는 공간이다.

‘책+우정+문화공간+서원’을 꿈 꾼 길담서원의 12년 역사를 갈무리한 책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이 나왔다. 저자는 길담서원 학예실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행사를 기획·진행·기록하며 공부하고 있는 이재성씨다.

길담서원은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복역한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가 오픈한 공간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책에 따르면 “2008년 2월25일 일명 경제 대통령이 인왕산 아래 청와대에 들어가는 날, 우리나라가 가벼워지는 것을 염려해 청와대 옆에 작은 문진을 눌러둔다는 생각으로 길담서원을 열었다. 스스로 길을 잃었고 목이 말라 우물을 팠다며 나와 같이 목마른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갈 공간이기에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3000여권의 책과 차, 피아노 등이 놓인 서점은 ‘이 곳을 찾는 모든 이가 주인공’이다. 서점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호칭은 민주주의’라는 칼럼을 쓰기도 한 박 대표의 뜻에 따라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별명을 부른다. 박성준 대표는 ‘소년’, 이재성 실장은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따온 ‘뽀스띠노’다.

시민들이 스스로 책방 겸, 공부방, 미술관, 공연장, 놀이터, 쉼터 등으로 다채롭게 이용하는 ‘길담서원’ 스토리는 흥미롭다. 우선 여기서 이뤄지고 있는, ‘책을 기반으로 정심과 몸의 균형을 이루는’ 각종 공부 모임의 면면이 다채롭다. 마르크스 ‘자본’ 읽기 모임, ‘녹색평론’ 읽기 모임, 자서전 읽기 모임, 경제공부모임, 시민과학공부모임, 헤겔 정신현상학 강독모임, 고전을 영어·독일어·프스어로 원서로 읽는 모임 등이 눈에 띈다. 또 차와 바느질 도구를 곁에 두고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함께 읽는 바느질 인문학, 청소년들이 ‘빨강머리 앤’을 영어 원서로 읽으며 드로잉하고 산책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엄마들도 함께 시작한 ‘엄마앤e모임’ 등도 흥미롭다.

서원 한켠에 2009년 공간을 마련한 ‘한뼘 갤러리’ 개관전 관련 대목에서는 반가운 이름도 보였다. 전시 기획에 도움을 준 독립큐레이터 전승보, 현재 광주시립미술관장이다. 개관전 행사 때는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겸재가 태어나서 평생 살았던 서촌(서점이 자리한 곳이다)에서 겸재와 세잔을 강의했고 전 관장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후 갤러리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후원전, 윤석남 드로잉전 등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

길담서원은 올해 충남 공주로 장소를 옮겨 또 다른 출발을 시작한다.

<궁리·1만7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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