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기생충’, 한국영화100년의 쾌거 그리고 위기
‘기생충’ 칸 황금종려상 수상…한국영화사 빛내다
‘기생충’ 세계에 한국영화 존재감 높여…‘극한직업’ 1600만명 관람
대기업 자본 유입 영화산업 안정적 기반 뒤에 스크린 독과점 폐해 발생
장르·소재 편중 관객 외면 속 ‘추격자’ 나홍진 감독 강한 개성 보여줘
“대기업 수직계열화 단점 극복할 방안 찾아야 한국영화 미래 밝을 것”
2019년 12월 25일(수) 04:50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주연배우 송강호.
1919년 10월 27일 ‘의리적 구토’(김도산)가 개봉한 이래 한국영화는 100년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달려왔다. 그리고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영광스런 100주년을 자축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기생충’은 국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높여 주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전통에서 나온 영화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속의 계단은 계급에 대한 은유인데, 이 계단의 영화적 활용은 ‘하녀’(1961·김기영)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한국영화의 전통에서 탄생한 영화인 것이다. 또한 ‘기생충’은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가 성장한 배경에서 나올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기생충’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100억이 넘는 제작비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10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는 ‘기생충’의 칸영화제 수상에 이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과 ‘극한직업’의 1600만 명 돌파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을 살펴보면 위기 국면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기도 하다.

1600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극한직업’.


한국영화는 2001년 50% 이상의 한국영화 점유율을 기록한 이래 ‘실미도’(2003·강우석) 이후 천만 영화가 본격적으로 쏟아졌고, 줄곧 관객점유율 50%를 유지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영화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국영화가 현재와 같은 규모로 커진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국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로 대변되는 대기업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전문화, 분업화, 고도화 등이 필요한데 대기업 영화사는 투자·배급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도심 곳곳에 멀티플렉스를 개관해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며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를 키웠다. 또한 대기업 영화사는 예측이 어려운 모험산업에 뛰어들어 영화들을 계속해서 제작하며 한국영화의 근간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기업 투자배급사를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된 것은 한국영화산업에 득과 실을 함께 안겨 주었다. 대자본 운용으로 영화산업에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규모가 큰 영화 중심의 투자와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영화는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 극장운영까지 하는 수직계열화 상태로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직계열화 시대 전에는 중소 제작사와 배급사가 주도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직계열화 기업을 거치지 않는 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결국 수익성 때문에 중·저예산 영화들은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유통 과정에서도 소외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한국영화의 다양성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

영화를 찍어야 하는 창작자 입장에서도 시장에서의 압박이나 요구가 더 심해진 것도 대기업 자본이 들어 온 이후 발생한 현상이다. 대기업의 자본은 투자심사를 하면서 상업적 검열을 하고 있다. 실리에 밝은 이들로 구성된 대기업의 투자심사요원들은 스타캐스팅을 전제로 관습적인 흥행코드를 나열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요 근래 10년 동안의 한국영화는 대기업 중심의 극도의 산업화 구조에서 다양한 시각과 독창적인 실험이 사라진 영화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흥행 요소에 집착하다 보니 장르 및 소재의 편중이 심하고 고만고만한 작품이 쏟아지면서 이를 외면하는 관객이 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한국영화가 전반적으로 질적 발전을 못 하고 있다는 말이며 개성 있는 영화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나오고 있는 한국영화의 위기론도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나오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곡성'


봉준호·박찬욱·김지운·최동훈 이후 새로운 대형 감독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 세대 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은 감독은 나홍진 감독 정도가 유일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추격자’(2008)로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준 나홍진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황해’(2010)에서도 뚝심 있는 연출력으로 영화의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그리고 ‘곡성’(2016)에서는 토속 신앙과 기독교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으로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기염을 토했다. 그러니까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강한 영화적 개성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물론 관객들의 지지까지 얻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영화는 나홍진 감독이 시도하고 있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영화들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현재의 주류 한국영화는 도전정신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현재 한국영화는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작품 수는 많아지고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작 중심의 투자로 흥행의 빈익빈 부익부가 반복되고 있다. 영화에는 큰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시장 논리와 완전히 별개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 그리고 극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관객들이 ‘진짜’ 원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 왜곡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야기시키는 단점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다양한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식상함을 느끼는 날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한국영화는 자신만의 색깔을 담보하는 영화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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