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과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2019년 11월 18일(월) 04:50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이야기하기로는 바벨탑이 단연코 대표적이고 특별하다. 흔히 이 탑은 현재에 주어진 삶을 넘어서 감히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바벨탑 이야기는 성경에도 기록될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탑을 쌓은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인들로 ‘바벨’은 곧 바빌로니아라는 고대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빌론에서 이교도의 탑이 하늘을 향해서 끝없이 올라가는 것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약 성서의 야훼는 이렇게 탄식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그렇게 해서 바빌론에서 사용하던 ‘하나의 언어’는 여러 가지 언어로 쪼개지고 나눠진다.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공동체의 언어가 이제 조각난 채 혼란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에게 서로 하는 말은 무의미하게 되었고, 탑을 위해서 뭉쳤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떠나갔다. 견고한 도시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워서 자신들의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려고 했던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바벨탑이 단순히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관한 이야기일까? 바벨탑 이야기를 뒤집어서 읽으면 ‘하나의 언어’가 가지는 힘과 능력의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바벨탑은 실상 은유일 뿐 문제의 본질은 인간이 가진 상호 소통의 능력이다. 이 소통 능력이 있기에 ‘못할 일’이 없을 만큼 위협적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비단 바빌로니아인들의 그 전설적인 탑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더, 하나의 언어와 말을 사용하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상호 왜곡과 오해 없이 사는 세상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소통 능력을 상실한 관계와 사회 속에서 함께 희망하고 설계할 수 있는 미래란 없다. 공동체의 하나로 통합된 언어를 상실한 대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동체의 파괴이며 집단 목표의 상실이다. 이렇게 보면 공동체에서 필요한 하나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며 최선의 것이 아닐까?

바벨탑에서 보듯이 언어의 분열이 곧 사람 사이의 분열이다. 소통 불가능한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 역시 분열과 분열의 정당화를 위한 왜곡이다. 소통은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지점을 지향한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하나의 언어가 ‘나’의 언어여야 한다는 독단을 넘어설 때 비로소 조금씩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언어가 곧 모두의 언어여야 한다고 믿으며 서로에게 강요하고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모두가 ‘말이 통하는 세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좋은 세상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수사로 그치지 않는 힘은 자신들은 비밀스럽고 견고한 또 다른 바벨탑으로 ‘하늘에 이르는’ 특권과 권력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것과 다른 생각과 언어를 ‘바벨탑’으로 단죄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쌓아 올린 바벨탑을 더 높고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낡고 쇠락한 가치로 흉물스러운 언어의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르타 마누힌이라는 아르헨티나의 미술가는 바벨탑의 의미를 “모든 예술가들의 꿈,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내부 갈등이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바벨탑의 의미를 뒤집어서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말이 통하는, 이상적 공간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가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고 미래의 이상향을 은유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시선을 허락한다. 바벨탑의 무너짐은 소통적 언어와 대화적 공동체의 무너짐이다. 탑이 무너진 이유 또한 야훼의 분노가 아니고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서로를 질시하고 배제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언어는 권력의 위장과 왜곡을 위한 도구가 아니고, 진실의 표현과 공유를 위한 통로다. 자주 맥락 없는 수많은 언어의 파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 대신에 배제와 편먹기의 유희만을 본다. 이제, 힘과 권력의 증표가 된 혼돈의 말을 반복 생산하는 대신에 모두를 위한 ‘하나의 언어’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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