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과 오만, 그 섬뜩한 한 끗 차이
2019년 10월 21일(월) 04:50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어느 고위 공직자의 태도에 대한 평가와 묘사가 자못 흥미롭다. 한 사람을 두고 태도와 언어 사용이 ‘당당하다’는 쪽과 안하무인이라는 입장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당당하다는 말처럼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 드문 데도 불구하고 혼란스럽다. 당당함은 사전적 풀이에 의하면 사람이나 그 입장·태도가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떳떳하고 정대함이다. 반면에 오만함이란 사람의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건방지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차이가 분명해서 한 대상에 대해서 당당함과 오만으로 나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페르시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465)의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유명한 다리우스 대제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는 용맹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왕위에 오르자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평정한 후 자신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정복이라는 숙원 사업을 시작한다. 살라미스 해전으로 알려진 그리스와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흔한 말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크세르크세스는 치밀한 준비 끝에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직접 전쟁에 나간다. 그리스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 수백 척의 배들을 연결해서 다리를 만들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날씨는 이 대담한 황제를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었던지, 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다리 구실을 해야 할 배들은 순식간에 부서지고 말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일이 어긋나는 것을 괘씸하게 여겨서 참지 못하는 크세르크세스의 분노를 진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벌하고 잘못을 묻는 것뿐이었다. 감히 대왕에게 풍랑을 일으켜서 앞길을 방해한 죄로 바다에 채찍 300대를 내리치고 바다의 신을 꼼짝 못하게 결박한다는 뜻으로 불에 달군 족쇄를 바다에 던지게 했다. 그의 명령은 즉시 실행되었다. 자연현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벌하는 이 태도는 무엇인가? 난관에 직면해서도 물러서지 않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한계를 모르는 오만함일까?

그리스인들에게 크세르크세스의 모습은 그저 오만, 즉 히브리스의 극치였다. 오만은 우선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과잉된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리스인들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게’ 사는 것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면서 오만을 경계했다. 그래서 오만을 통제하는 개념을 신격화해서 응징의 신, 네메시스라고 불렀다. 자연 질서와 힘까지 마음대로 통제하려 한 크세르크세스에게 응징의 신, 네메시스가 들이닥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전쟁에서 결국 크게 패하고, 자신의 장군들과 병사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큰 소리로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말년에 들어서는 아들과 측근의 신하들이 결탁한 배신으로 왕위 자리까지 내주었다.

오만이란 ‘오만과 편견’의 작가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뭉친 ‘당당한’ 자세는 기실 오만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곁가지다. 이 문제를 크세르크세스의 과도한 자신감과 오로지 목표를 향한 질주에서 본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처럼 옳고 그름을 독단으로 결정하고 강행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아무도 가질 수 없다. 그런 권력이란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의 과시적인 행동을 ‘짐작건대 자신의 힘을 보여 주고 후세에 기념비로 남기고 싶어 순전히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위대한 자가 되기 위한 영웅적 욕망에서 나온 행위는 당당함이 아니고 오만과 허영이라는 것이다.

당당함은 주어진 힘이라고 해서 그 힘의 밑바닥이 드러나도록 쏟아붓는 강단 있는 자세가 아니고 오히려 힘의 사용을 절제함으로써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당당함과 오만을 나누는 현실적 기준은 단순하다. 힘 있는 자의 당당함이란 들여다보면 오만함에 불과하다. 당당함이란 보통의 힘없는 사람이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것이다. 이제 힘의 잘못된 쏠림을 바로잡는 당당함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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