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평면의 역사 - B. W. 힉맥 지음·박우정 옮김
2019년 09월 20일(금) 04:50
에스컬레이터는 평평한 플랫폼에 수직으로 선 채로 하나의 평평한 표면에서 다른 표면으로 이동하게 해준다. 엘리베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소소의 책 제공>






“곡물 농사에서 현대식 수확기들은 넓은 일직선 날은 예측 가능하고 지속적인 환경, 즉 변화 없는 평평함을 요구한다. 1900년경 증기기관을 농기계에 사용했을 때는 땅을 매끈하게 고르고 엔진이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돕기 위해 기계 앞쪽에 무거운 룰러를 부착했다. 이 모든 것은 땅의 표면을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최대의 수익을 내는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원자재로 이해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본문 중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대부분 평면에서 이루어진다. 평평한 종이에 글을 쓰고 평평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업무를 한다. 그뿐 아니다. 평평한 도로를 달리거나, 평평한 바닥에서 생활한다.

이렇듯 인간에게, 고대에서 현대까지 평면은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아무런 의식없이 평평한 표면이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그것의 가치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평면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지될까.

인류 역사의 기반인 평면의 실체를 파헤친 책이 발간됐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이자 작가인 B. W. 힉맥이 저술한 ‘평면의 역사’는 평평함의 다양한 관점을 조명한다.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평면의 개념부터 평평한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식을 아우른다.

마이클 브라보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독창적이고 놀라운 내용이 가득하다.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팀 인골드 에버딘 대학교 교수는 “일단 읽기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평면은 자연이 갖고 있는 지형의 다양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의 승리하고 본다. 평면의 일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미의 대상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실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면의 중요한 의미는 “공간을 구성하는 힘을 정의하는 개념의 기능적 단면과 추상적 단면이 날실과 씨실처럼 잘 짜였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은유적 의미에서 평면의 우세성은 현대의 인간이 경험한 창조에 버금간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평면은 매끄러움, 수평, 예측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연유로 이동성에 용이한데 사회적, 경제적 효용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이와 달리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누구나 인식하는 단조로움, 동질성, 부재, 결핍, 무미건조, 지루함 등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편평족이나 빈약한 가슴, 낮은 코 등은 조롱의 대상이었다고 본다(물론 시대에 따라 이러한 신체적 특징이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 문화도 있었지만). 또한 평평한 풍경은 쉽게 폄하되기 일쑤였다. 수려한 경관이나 웅장한 장면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에서 평면은 모두 계획됐거나 인위적으로 설계된 거였다. 오늘날의 5000만km가 넘는 도로, 100만km에 이르는 철도는 건축학적인 평면 도시를 연결한다. 국지적으로 평평하게 다져진 경관의 대부분은 산림 개간이나 토목작업에서 기인했다.

“예를 들어 세계 최상의 커피는 가파른 비탈에서 자라지만 수확용 기계는 그런 지형에서 넘어져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기계를 값비싼 노동력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지역에서는 가파른 비탈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평평하다는 이점이 있는 환경에서 커피를 재배한다.”

한편으로 평평한 것의 밋밋함 때문에 다양성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진다. 획일화되는 일상이 피로감을 주지만 효율과 편리, 공정함의 가치를 내세우는 문화에 익숙해진 탓이다. 평면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대 세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면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지형의 다양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의 승리이다. 평면의 일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며 “평면은 문명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살아 숨 쉬는 지구에 대한 인간의 불경함의 표시이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소소의책·2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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