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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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봉준호의 ‘기생충’. 나에게 이 영화는 감격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봉준호라는 인간에 대해 궁금해져 검색한 결과, 그가 근대 소설가 박태원의 외손자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기생충’은 두 계급이 대립하는 구도로 그려진다.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박 사장(IT 기업 CEO)과 기우의 친구 민혁(연세대 공대생, 교환 학생으로 단기 유학)으로 형상화되는 부르주아. 그리고 1999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텐딩에 의해 새로이 명명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있는 노동자 집단)’인 기택 가족과 문광 가족. 봉준호는 후자인 프레카리아트를 인지해야 하는 일, 인식해야 하는 일을 통해 반자본론 또는 근대가 만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기생충’은 기득권의 ‘몰락’을 보여준 탈근대적인 스토리라는 것.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근대적 산물(자본주의, 근대, 중심, 개인)들의 위기 또는 종언(終焉)이라는 결말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왜 영화가 몰락을 말하는가? 그 첫 대상은 자본주의의 생산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몰락이다. 근대 가족, 즉 핵가족은 18세기 유럽 부르주아 중산층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근대 가족의 표본인 혈연(자연) 가족은 종교적 신념과 어우러져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해냈다. 혈연 가족이라는 형태가 거부감 없이 세계적 차원에서 수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먼저 박사장과 기우 친구 민혁. 두 남자는 ‘위생(근대 과학의 산물)’과, ‘기세(氣勢)’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낸다. 위생의 차원에서 보자면, 박사장은 잘 정돈된 그야말로 깨끗한 공간을 선호하며 냄새로 선을 그어 계급을 나눈다. 민혁은 영화 초반 기우네 집에 들어섰을 때 발에 붙은 이물질에 신경 쓰고, 슈퍼 앞 테이블의 먼지를 손가락으로 훔쳐 확인하는 등 위생에 민감함을 보이며 짧지만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기세’다. 박사장은 사업의 상승세에 힘입어 인지상정이라 여겨지는 미덕보다는 매사에 끊고 맺음이 확실한, 존재 자체가 기세다. 민혁 역시 노상 방뇨 남에게 기택이 모기 소리로 “싸지마세요, 씨발” 하는데 비해, 민혁은 “정신차려, 정신!”하고 흉성으로 소릴 지른다. 이에 기택은 “박력 있다!”로 충숙은 “역시 대학생이라 기세가 다르다”고 반응한다. 그러나 남자들의 연대는 여기까지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남자들의 ‘몰락’이 시작된다.
자본의 상속자인 다송은 귀신(오근세)을 봤다는 이유로 트라우마 치료 중이다. 다송이 발작을 보이면 15분이라는 시간 내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암시적이다. 다송은 인디언 놀이를 즐기며 종족 보존에 열중하지만, 기택과 충숙이 동일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을 폭로하며 미래의 박 사장을 예고한다. 그런 다송은 결국 생일잔치 날 귀신의 얼굴을 다시 보고 쓰러지지만, 박사장이 기택의 칼에 쓰러져 15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지키지 못한다.
다음으로 기택. 그는 위조 서류로 알바 면접을 가는 아들에게 “아들아, 난 네가 자랑스럽다”라며 용기를 주지만, 정작 자신은 무계획, 즉 무위(無爲)의 삶을 선택해 생산성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기택이 견딜 만했다. 그러나 영화의 종반부인 동일 계급인 오근세의 난투 장면에서 보인 코를 틀어막는 박 사장의 행동에, 그동안 그로부터 ‘냄새’의 차별을 받아오던 점을 상기하며 격분해 그를 단호히 처벌한다. 이로써 기택은 지하 세계로 ‘증발’하고, 박 사장과 오근세, 다송은 죽고 남은 남자는 기우뿐이다. 기우는 “대학, 취직, 결혼,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한다. 과연 기우 ‘개인’이 피자 시대 알바를 열심히 ‘노오력’ 하면 저택을 살 만큼의 떼돈을 벌 수 있을까?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은 ‘흙수저들의 외침’과 ‘비정규직들의 울부짖음’으로 ‘지금, 여기’에 현재 진행형이다.
‘기생충’은 두 계급이 대립하는 구도로 그려진다.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박 사장(IT 기업 CEO)과 기우의 친구 민혁(연세대 공대생, 교환 학생으로 단기 유학)으로 형상화되는 부르주아. 그리고 1999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텐딩에 의해 새로이 명명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있는 노동자 집단)’인 기택 가족과 문광 가족. 봉준호는 후자인 프레카리아트를 인지해야 하는 일, 인식해야 하는 일을 통해 반자본론 또는 근대가 만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기생충’은 기득권의 ‘몰락’을 보여준 탈근대적인 스토리라는 것.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근대적 산물(자본주의, 근대, 중심, 개인)들의 위기 또는 종언(終焉)이라는 결말과 맞닿아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기세’다. 박사장은 사업의 상승세에 힘입어 인지상정이라 여겨지는 미덕보다는 매사에 끊고 맺음이 확실한, 존재 자체가 기세다. 민혁 역시 노상 방뇨 남에게 기택이 모기 소리로 “싸지마세요, 씨발” 하는데 비해, 민혁은 “정신차려, 정신!”하고 흉성으로 소릴 지른다. 이에 기택은 “박력 있다!”로 충숙은 “역시 대학생이라 기세가 다르다”고 반응한다. 그러나 남자들의 연대는 여기까지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남자들의 ‘몰락’이 시작된다.
자본의 상속자인 다송은 귀신(오근세)을 봤다는 이유로 트라우마 치료 중이다. 다송이 발작을 보이면 15분이라는 시간 내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암시적이다. 다송은 인디언 놀이를 즐기며 종족 보존에 열중하지만, 기택과 충숙이 동일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을 폭로하며 미래의 박 사장을 예고한다. 그런 다송은 결국 생일잔치 날 귀신의 얼굴을 다시 보고 쓰러지지만, 박사장이 기택의 칼에 쓰러져 15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지키지 못한다.
다음으로 기택. 그는 위조 서류로 알바 면접을 가는 아들에게 “아들아, 난 네가 자랑스럽다”라며 용기를 주지만, 정작 자신은 무계획, 즉 무위(無爲)의 삶을 선택해 생산성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기택이 견딜 만했다. 그러나 영화의 종반부인 동일 계급인 오근세의 난투 장면에서 보인 코를 틀어막는 박 사장의 행동에, 그동안 그로부터 ‘냄새’의 차별을 받아오던 점을 상기하며 격분해 그를 단호히 처벌한다. 이로써 기택은 지하 세계로 ‘증발’하고, 박 사장과 오근세, 다송은 죽고 남은 남자는 기우뿐이다. 기우는 “대학, 취직, 결혼,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한다. 과연 기우 ‘개인’이 피자 시대 알바를 열심히 ‘노오력’ 하면 저택을 살 만큼의 떼돈을 벌 수 있을까?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은 ‘흙수저들의 외침’과 ‘비정규직들의 울부짖음’으로 ‘지금, 여기’에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