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판결, 정치의 도덕성에 대한 단상
2019년 09월 09일(월) 04:50
일본의 강제 동원에 따른 개인의 손해 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아베 정부가 수출 규제를 강행한 지 벌써 두 달을 지나고 있다. 이 수출 규제의 ‘부도덕한 행태’는 필자로 하여금 법과 판결의 도덕성, 정치의 도덕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법과 도덕의 구별은 매우 어렵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하는 견해와 ‘법은 도덕의 최대한’이라는 견해의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명제들이 관점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법철학자 예링이 법과 도덕의 구별하기 곤란함을 수많은 배들을 충돌·침몰하게 한 남미의 최첨단 희망봉에 비유했겠는가.

한편 규범인 법과 도덕은 사실인 정치와 분명히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공동체의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형성한다는 점에서 교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규범이 바람직한 정치 환경을 만들어 냄으로써 정치가 도덕성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는, 법과 도덕의 구별 난이도와 상관없이, 도덕적인 법과 그에 근거를 둔 판결을 정치적 판단에 근거하여 부인하는 것이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국제법상으로 볼 때 국가 사이의 청구권협정만으로, 개인의 명시적·개별적 위임도 없이,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포기시키는 것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를 면책해 준다는 내용이므로 협정 자체가 무효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기 위해 실시한 강제 동원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이므로, 아베 정부가 우리나라 대법원의 개인 청구권 판결을 부정하는 것은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국제법에 정면으로 반한다.

언론에 따르면, 아베 정부가 국제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까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을 규제한 이유는, 히데요시가 열도 통일 후 대륙 정벌에 나선 것과 같이, 일본이 겪는 복합적인 위기에 대한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아울러 그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 내 여론 조사에 의하면, 아베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도가 상승했다고 하니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내부적인 위기를 돌파하는 것은 실패한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나라가 원자재를 국산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수입을 다변화하면 일본 기업은 새로운 수요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적인 판단에 근거를 둔 이번 수출 규제 조치로 자유 무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분업 구조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렸다. 그리하여 아베 정부는 거짓말로 변명을 일삼고 전범 국가가 마땅히 하여야 할 반성도 하지 않는 군국주의 이미지에 더하여, 국가 간 분업 체제를 흔드는 원흉으로 국제 사회에서 불신과 경멸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36년간 지배를 당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여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일본을 뛰어 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며, 마침내 경제적으로도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을 보임으로써, 일본에 위기 의식과 견제 심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실천하는 한편 아베 정부에 대해 대화를 촉구하고, 우리 국민은 이번 일본 제품 불매 및 여행 거부 운동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 등의 불만 표출은 인권, 그리고 법과 판결의 도덕성을 무시하지 않는 한 정당화 될 수 없다.

아베 정부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로비 자금을 전 세계에 살포하더라도 군국주의적 관점에서 침략 행위를 반성커녕 오히려 반인도적 침략 사실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왜곡·날조하는 한,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법과 판결의 도덕성과 정치적 도덕성을 확보하여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부도덕하고 정치공학적으로 행동하는 일본을 결국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 여파처럼 광범위한 영향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법과 판결의 도덕성은 공동체에 일정 범위 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부도덕한 내용의 법과 판결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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