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상’ 수상 완도 ‘푸른뫼중앙의원’ 이강안 원장] 폐원 위기 병원 살려 16년 ‘청산도 슈바이처’
의사들 근무 꺼리는 섬마을...왕진 등 16만 건 외래진료
불우이웃 후원 등 일상이 선행...병상의 KIA 코치 돕기도 꾸준
불우이웃 후원 등 일상이 선행...병상의 KIA 코치 돕기도 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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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에서 홀로 인술을 펼치고 있는 ‘백발의 의사’ 이강안(83·푸른뫼중앙의원) 원장이 성천상 수상자로 시상대에 오른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은 27일 홀리데이 인 광주호텔에서 제7회 성천상 시상식을 연다.
성천상은 국내 최초 수액제 개발과 필수의약품 공급을 통해 국민 보건 향상에 기여한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묵묵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인류 복지 증진에 공헌한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매년 서울에서 진행되던 행사는 올해 처음으로 광주에서 열린다. 멀리 청산도에서 걸음을 해야 하는 이 원장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찾아가는 시상식’이다.
1962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 원장은 잠실병원 부원장, 혜민병원 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 화곡동에 이강안 의원을 개원했다. 지금은 청산도와 인근 섬마을의 유일한 의사로 지내고 있다.
벌써 16년째 이어지는 이 원장의 헌신이다. 지난 2004년 푸른뫼중앙의원이 근무 의사가 없어 폐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고도 없는 곳을 찾은 게 시작이었다.
이 원장은 “친구가 폐원 위기의 병원이 있다면서 봉사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니 가서 봉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2년 정도 봉사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2003년 병원이 설립됐지만 1년 동안 의사가 네 차례나 바뀔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했다. 또 고령 환자가 많아 응급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이고, 당시에는 육지로 가는 배는 하루 1편 밖에 없었다.
이 원장은 “의사를 구해도 오지를 않는다. 벽지이고 젊은 사람들은 자녀 교육 문제도 있다. 후임도 안 구해지고 주민들하고 정도 많이 들었다”며 청산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말했다.
그는 꾸준히 선행활동도 펼치고 있다. 살림이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고기를 지원하고,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고 경로잔치를 열기도 한다.
열렬한 KIA 타이거즈 팬인 이 원장은 병상에 있는 차영화 코치를 돕기 위한 성금도 보내고 있다. 지난 2013년 광주일보 기사를 보고 차 코치의 소식을 접한 그는 매년 겨울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봉사’의 삶을 인정받아 상을 받게 됐지만 이 원장의 광주 나들이는 짧다.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 원장은 오전 7시 30분 진료를 시작해 하루 평균 120명의 환자를 돌본다. 배편으로 작은 섬으로 왕진도 다니는 등 지난 16년간 수행한 외래진료 건수만 48만 건. 늦은 밤에도 환자들이 그의 집을 찾는다.
이 원장은 시상식 날에도 오후 1시 배로 청산도를 나와 광주로 이동한 뒤 행사가 끝나고 완도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28일 오전 6시 30분 배로 다시 청산도로 돌아가게 된다.
이 원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30명 정도의 환자가 기다린다.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며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는 진리의 말씀이 있어서 많이 베풀고 있다. 봉사의 뿌리는 기쁨이다. 삶이 아주 재미있다. 건강하게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은 27일 홀리데이 인 광주호텔에서 제7회 성천상 시상식을 연다.
성천상은 국내 최초 수액제 개발과 필수의약품 공급을 통해 국민 보건 향상에 기여한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묵묵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인류 복지 증진에 공헌한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1962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 원장은 잠실병원 부원장, 혜민병원 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 화곡동에 이강안 의원을 개원했다. 지금은 청산도와 인근 섬마을의 유일한 의사로 지내고 있다.
이 원장은 “친구가 폐원 위기의 병원이 있다면서 봉사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니 가서 봉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2년 정도 봉사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2003년 병원이 설립됐지만 1년 동안 의사가 네 차례나 바뀔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했다. 또 고령 환자가 많아 응급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이고, 당시에는 육지로 가는 배는 하루 1편 밖에 없었다.
이 원장은 “의사를 구해도 오지를 않는다. 벽지이고 젊은 사람들은 자녀 교육 문제도 있다. 후임도 안 구해지고 주민들하고 정도 많이 들었다”며 청산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말했다.
그는 꾸준히 선행활동도 펼치고 있다. 살림이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고기를 지원하고,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고 경로잔치를 열기도 한다.
열렬한 KIA 타이거즈 팬인 이 원장은 병상에 있는 차영화 코치를 돕기 위한 성금도 보내고 있다. 지난 2013년 광주일보 기사를 보고 차 코치의 소식을 접한 그는 매년 겨울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봉사’의 삶을 인정받아 상을 받게 됐지만 이 원장의 광주 나들이는 짧다.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 원장은 오전 7시 30분 진료를 시작해 하루 평균 120명의 환자를 돌본다. 배편으로 작은 섬으로 왕진도 다니는 등 지난 16년간 수행한 외래진료 건수만 48만 건. 늦은 밤에도 환자들이 그의 집을 찾는다.
이 원장은 시상식 날에도 오후 1시 배로 청산도를 나와 광주로 이동한 뒤 행사가 끝나고 완도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28일 오전 6시 30분 배로 다시 청산도로 돌아가게 된다.
이 원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30명 정도의 환자가 기다린다.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며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는 진리의 말씀이 있어서 많이 베풀고 있다. 봉사의 뿌리는 기쁨이다. 삶이 아주 재미있다. 건강하게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