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먹는 주먹밥
[홍행기 편집부국장·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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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 주는 것은 우리의 과거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스티븐 호킹은 유작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에서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처럼 설명했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두웠거나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크고 강력한 목표 의식을 지닌 이들은 어려웠던 옛 시절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의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극단적인 행동으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중 하나다. 중국 춘추 시대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에게 패배한 뒤 온몸이 배기는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군사를 훈련시켜 결국 설욕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고국에 돌아온 월왕 구천도 무려 20년간이나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하다 마침내 오왕 부차에게 승리한다. 밤잠 설치게 만드는 불편한 잠자리, 그리고 온몸의 감각을 진저리치게 만드는 쓸개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해 준 셈이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을 민족 최대 명절로 꼽는 유대인들에게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의 속박에서 고통받던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으로 탈출하기 직전, 유대인들의 신(神)은 한밤중에 모든 가정의 첫 아이와 모든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이며 이집트 땅을 휩쓴다.
그러나 신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대인의 가정은 ‘뛰어넘어’(유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후 유대인들은 그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다. 탈출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 빵이 제대로 부풀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날 여러 가지 야채 대신 쓴 약초를 먹는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야 했던 쓰디쓴 고난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쓴 약초를 한 번은 짠 물에, 한 번은 단 물에 담근다. 눈물이 즐거움으로, 고통이 기쁨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 광주에서도 5월 그날이 오면, 시민들은 아무런 맛도 없는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다. 군사 정권의 엄혹한 계엄령 속, 총검에 찔리고 총탄에 맞으면서도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오직 서로를 의지하며 주먹밥을 나눠 먹었던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대인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이 땔나무에 누워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쓴 약초와 주먹밥을 먹었던 것은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이 24일 앞으로 다가왔다. 2년 전 광주에서 열린 5·18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족들을 끌어안아 주면서 ‘광주의 한(恨)’이 비로소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날의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간인 집단 학살, 암매장지의 소재, 집단 발포 책임자, 헬기 사격의 경위, 북한군 침투 조작, 행방불명자의 규모 등 각종 의혹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규명해야 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아직까지 구성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국당은 특히, 5·18 망언의 당사자인 김순례 최고위원과 김진태 의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3개월’과 ‘경고’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반발을 사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3·15의거와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 땅에 민주주의를 굳건히 자리 잡게 했으며, 지난 2016년 겨울 촛불 혁명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다. 하지만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5·18은 여전히 반쪽일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찾아내고 지켜 가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5월 18일, 광주 시민은 또다시 주먹밥을 지어 먹을 것이다. 광주와 우리 민족의 과거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그 뿌리인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전국화, 세계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진상 규명을 거부하는 한국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두웠거나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크고 강력한 목표 의식을 지닌 이들은 어려웠던 옛 시절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신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대인의 가정은 ‘뛰어넘어’(유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후 유대인들은 그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다. 탈출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 빵이 제대로 부풀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날 여러 가지 야채 대신 쓴 약초를 먹는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야 했던 쓰디쓴 고난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쓴 약초를 한 번은 짠 물에, 한 번은 단 물에 담근다. 눈물이 즐거움으로, 고통이 기쁨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 광주에서도 5월 그날이 오면, 시민들은 아무런 맛도 없는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다. 군사 정권의 엄혹한 계엄령 속, 총검에 찔리고 총탄에 맞으면서도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오직 서로를 의지하며 주먹밥을 나눠 먹었던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대인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이 땔나무에 누워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쓴 약초와 주먹밥을 먹었던 것은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이 24일 앞으로 다가왔다. 2년 전 광주에서 열린 5·18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족들을 끌어안아 주면서 ‘광주의 한(恨)’이 비로소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날의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간인 집단 학살, 암매장지의 소재, 집단 발포 책임자, 헬기 사격의 경위, 북한군 침투 조작, 행방불명자의 규모 등 각종 의혹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규명해야 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아직까지 구성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국당은 특히, 5·18 망언의 당사자인 김순례 최고위원과 김진태 의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3개월’과 ‘경고’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반발을 사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3·15의거와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 땅에 민주주의를 굳건히 자리 잡게 했으며, 지난 2016년 겨울 촛불 혁명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다. 하지만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5·18은 여전히 반쪽일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찾아내고 지켜 가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5월 18일, 광주 시민은 또다시 주먹밥을 지어 먹을 것이다. 광주와 우리 민족의 과거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그 뿌리인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전국화, 세계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진상 규명을 거부하는 한국당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