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회관’, 세상속으로
2019년 04월 24일(수) 00:00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나태주 시인의 ‘행복’중에서).

최근 제주 서귀포관광극장에서 열린 ‘나태주 시인과 함께하는 시 읽는 오후’ 콘서트. 서귀포시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나 시인의 시 낭독과 시민들의 시낭송 공연 등으로 꾸며졌다. 참석자들은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시인의 시를 읊으며 기억 저편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게 서귀포극장은 1963년 문을 연 서귀포 최초의 극장이다.

낡고 허름한 외관의 서귀포극장은 350m의 ‘이중섭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중섭화백이 한국전쟁을 피해 서귀포에서 머물렀던 흔적들을 보전한 곳으로 이 화백의 초가집, ‘이중섭 미술관’, 공방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산뜻한 색감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들이 많아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이중섭거리를 서너 차례 방문했지만 서귀포극장을 둘러본 건 올 봄이 처음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매표소와 낡은 영사기 등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로비에서 안쪽으로 발걸음을 몇발짝 옮기자 ‘반전’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이 그대로 들어오는 지붕없는 무대와 계단식 객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돌로 쌓아 올린 벽과 그 벽 위로 뻗어 있는 초록색 담장이넝쿨이 마치 잘 짜놓은 미장센 처럼 강렬했다. 그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3년 서귀포시는 화재 등으로 수십년간 방치된 이곳을 예술극장으로 리모델링했다. 공간의 매력을 살린 프로그램과 이중섭거리와 연계한 서귀포 건축기행 코스로 매년 수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너무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광주에도 서귀포극장 못지 않는 근사한 ‘지붕없는 공연장’이 있다. 광주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광주시민회관’이다. 1971년부터 30년간 지역 최초의 복합문화시설로 시민들과 동고동락해온 추억의 장소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극장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옛 모습 그대로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로는 그만이다. 그것도 광주천을 건너 계단만 오르면 만날 수 있으니 접근성도 좋다.

현재 광주시는 이 공간을 청년들의 창의성과 열정으로 되살리는 공공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하지만 공원안에 들어선 입지조건 때문에 시간이 멈춰있는 야외공연장 외에는 활용 가능한 시설과 공간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시민회관의 ‘화려한 시절’을 재현하기 위해선 시의 발상의 전환과 시민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차제에 인근의 광주문화재단과 내년 완공예정인 AMT(Art and Media Technology), 나아가 광주천 너머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예술의거리, 대인시장과 잇는 ‘큰 그림’을 그리자. 자칫 현실적 여건에 묶여 ‘틀’을 깨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재생사업으로 끝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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