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生을 말하다] <6> <제2부> 인생 2막 여는 사람들 ③ 마을 이장 된 전 교장선생님
교육자의 삶 훌훌 벗고 ‘농촌에 살어리랏다’
교장·장학사 거쳐 광주교육정보원장 퇴직...장성 송산리서 꿈 꾸던 농촌생활 실현
공시지가 열람 등 모든 정보 주민과 공유...‘마을 공유재산 등기’ 해묵은 숙제 해결
모범 이장 선정…내일 일본으로 해외연수
기용위(68)·윤춘옥(65)씨 부부가 22일 장성군 북이면 송산리 집 마당에서 개와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광주에서 40여년간 교편을 잡았던
2019년 03월 25일(월) 00:00
기용위(68)씨는 장성군 북이면 송산리 이장이다.

지난해 1월 1일 이장으로 선출됐으니 올해로 2년차 이장이다. 2015년 귀촌하기 전까지 그는 교사·교육행정가로 근무했다. 광주에서 초등학교 교원, 교감, 교장을 지냈고 장학사도 지냈다. 퇴임하기 전 마지막 공직은 광주시교육정보원장. 부이사관(3급)쯤 되는 자리다.

2013년 퇴직 후 2015년 송산리에 터를 잡았다. 고향 마을은 장성 황룡면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집터를 본 후 송산리 귀촌을 결심했다고 한다. ‘퇴직하면 농촌으로 가리다’고 틈만 나면 읊조리던 그였다. 아내 윤춘옥(65)씨와 장성한 두 아들도 귀촌을 결심한 가장의 결정을 지지했다.

3년간 농촌살이에 적응하며 농촌이 주는 여유와 기쁨을 만끽한 뒤 2017년 말 또 다른 결심을 했다. 마을 이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것이다. 기씨는 “귀촌 생활이 너무 좋았고 마을 주민들은 더 좋았다. 은퇴하면 정해진 거 없이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생각이 바뀌더라. 더 늙기 전에 마을을 위해 뭐라도 해야되겠다고”라며 이장 출마 배경을 밝혔다.

강릉 유씨 집성촌으로 40세대 규모인 마을에서 유씨가 아닌 성씨가 이장으로 뽑힌 것은 마을이 생겨난 이후 처음이었다. 주민들은 기씨가 3년간 보여 준 말과 행동, 그리고 이장이 되고자 하는 열정을 높이 샀다.

“항상 베풀려고 했어요. 내 것 만 움켜쥐고, 이해에 민감해야하지 않으려고 했구요. 집에 놀러 오시면 집에 있는 술과 음식을 나누고 특히 말을 조심했지요. 혹여라도 무시하는 말을 해서는 상처를 입어 관계가 틀어져 버립니다. 난 시골일을 잘 모르니 배운다며 낮추고 들어갔고, 마을 일이라면 항상 내가 손해봐야지라는 마음을 가졌어요”

이장이 바뀐 후 마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장이 된 후 중점을 둔 것은 ‘정보 공유’였다.

면사무소에서 이장단 회의가 끝나면 곧장 마을로 달려와 마을 회의를 소집해 행정사항을 알렸다. 예방접종 안내, 비료 지급, 무료 영화 상영, 공시지가 열람 등 주민들이 알면 보탬이 되는 사항인데도 이전에는 제대로 공유가 되지 않았던 점을 떠올려 되도록 모든 사항을 빠짐 없이, 쉽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농촌에도 스마트폰이 충분히 보급된 이후여서 때로는 단체 카카오톡 방을 통해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한다.

마을 공유재산(부동산)을 등기한 것도 그의 공적이라면 공적이다.

마을회관, 회관부지, 마을 공동 건조장 등 마을 공유재산은 그동안 개인 명의로 돼 있었으나 이전까지 누구도 공동명의로 등기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흐르면 소유관계 다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절차가 까다로웠기에 이전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장이 되고난 이후 마을을 위해 무엇을 신청하거나 지원을 요청할 때,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요건을 갖추고 설득력 있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를 낮추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니까 공무원들이 극적으로 도왔어요”

베푸는 삶은 부창부수였다. 아내 윤씨는 명절이면 직접 토하(민물새우) 젓을 담가 이웃과 나눴다. “광주에서 지낼때부터 토하젓을 담가 이웃과 나눴어요. 시골에 와서도 토하젓을 예쁜 그릇에 담아 한 집도 빼지 않고 돌렸어요. 이웃과 나누고 사니깐 농촌 생활이 주는 기쁨, 푸근한 인심이 2배 3배로 되돌왔답니다”

‘이해 다툼하지 않고 베풀며 살겠다’는 그의 인생 2막이 주변에서 인정 받은 결과일까. 기씨는 모범 이장에 선정돼 오는 26일 일본으로 연수를 떠난다.

한편 기씨는 귀촌을 염두에 둔 도시인들에게 군청에서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와 ‘면사무소’를 적극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군(郡)마다 정책이 다를 수는 있으나 귀촌인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데 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 농업기술센터와 면사무소라는 것이다.

/장성=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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