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이와 2020 비엔날레
2019년 03월 20일(수) 00:00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는 현대미술을 특정 주제로 묶는 건 관람객들의 감상을 제한시키는 반 예술적 행위다. 주제가 없다고 해서 ‘주제의 부재(absence of theme)’는 아니다.”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엔위저 오쿠이는 개막 전 인터뷰에서 ‘도발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비엔날레의 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주제는 물론 스타작가와 부대 프로그램를 없앤 ‘3무(無)비엔날레’를 표방한 것이다. 특정 주제를 내걸지 않고 세계 곳곳의 전시를 한자리에 모은 7회 비엔날레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유료 관람객 36여 만 명을 불러 모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 7회 비엔날레의 최대 성과는 ‘일상의 재발견’이었다. 오쿠이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대인시장, 의재미술관, 광주극장 등 평범한 공간에 애정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복덕방 프로젝트’는 단연 화제였다. 사전답사차 대인시장을 둘러본 그는 상인들의 순박한 표정과 코끝을 자극하는 생선의 비릿내, 게장과 비빕밥 등에 반해 아예 (이 곳에) 복덕방을 차렸다. 도심공동화로 침체된 대인시장의 빈 점포들을 지역작가 30여 명에게 전시공간으로 빌려준 것이다. 당시 올림픽 여자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의 모습을 그래피티로 재현한 ‘시장구경 프로젝트’는 포토존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복덕방 프로젝트’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비가 투입되면서 예술시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예술을 통한 도심재생 성공 사례로 회자되면서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이 됐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8 한국관광의 별’의 쇼핑부문에 선정됐다.

대인시장을 세상에 알린 오쿠이 감독이 지난 15일 투병끝에 5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그는 광주비엔날레 역사상 첫 외국인 총감독, 2015년 아프리카 출신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레전드’였다. 당시 그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젊은 작가 3명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했고 임흥순 작가는 한국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오쿠이 감독, 아니 광주비엔날레가 거둔 ‘위대한 레가시’(legacy·유산)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2020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이끌 예술감독으로 이스탄불 출신 큐레이터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와 인도 출신 나타샤 진발라(Natasha Ginwala)가 선정됐다. 네덜란드, 중국, 러시아 세계 곳곳의 문화기관에서 활동해온 데프네 아야스는 현재 모스크바 연구 및 예술작품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전시단체 V-A-C 재단 총괄큐레이터로 재직중이다. 또한 30대 젊은 기획자인 나타샤 진발라는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협력 큐레이터로 다수의 국제전 등을 기획했다.

오는 2020년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 4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다. 모쪼록, 두 여성 감독이 내년 광주에서 비엔날레 역사, 나아가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또 한번의 레가시를 남겨주길 바란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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