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밤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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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산지 어느 새 6년째 접어들었다. 그간 산 설고 물 설은 곳에 살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지난 여름밤 새벽 두 시경에 밤손님들이 찾아온 사건이다.
이런 비 오는 날은 도둑이 들 수도 있다며 현관에 불까지 훤히 밝혀 놓았건만 이들은 당당히 현관문을 통해 들어왔다. 인기척에 놀라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강도다(We are robbers.)” 라고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들이닥쳤다.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플래시를 비추면서 분업으로 움직이는 4인조, 그중 영어를 하며 두목으로 보이는 자는 말을 시키면서 우리를 지키고, 다른 하나는 용맹스런 구르카 족들이 전쟁 때 쓰던 초승달처럼 휘어진 ‘쿠꾸리’라는 칼을 칼집에 딱딱 부딪치며 공포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머지 둘이 난장판을 만들며 이 방 저 방 뒤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데 결국 현금과 여권을 찾아내더니 인심 쓰듯 여권은 돌려주었다. 하마터면 고맙다는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나는 모기장 속에서 홑이불을 끌어올려 눈만 빼꼼 내놓고 덜덜 떨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저들과 나 사이에 있는 모기장이 대단한 보호막처럼 여겨졌다. 모기장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강도들은 나가면서, “자이머시, 부라더” 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 후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 만일 신고하면 다시 와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네팔인의 인사는 “나마스떼”이고 “자이머시(예수 승리)”는 크리스천 인사이다. 나는 그자 뒤에 대고 “그럼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소리쳤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경찰 신고를 안 할 생각으로 옷가지들을 치우고 방을 정리했다. 놈들의 협박도 무서웠고 이곳 경찰에게서 별 도움을 받을 거란 기대도 들지 않았다.
아침에 집 주인에게 연락하니 단숨에 달려와서 경찰에 신고하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한다고 했다. 경찰 두 팀이 왔고 사진을 찍고 조서 작성에 들어갔다. 야간에 흉기를 든 다수는 특수 강도의 세 요건을 두루 갖춘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 집을 궁금해 하던 동네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수박과 텃밭에서 딴 오이를 낮 손님들에게 대접하느라 바빴다.
경찰은 100번으로 전화하면 즉시 달려온다 했고, 동네 분들은 이는 아는 자들의 소행이고 외국인들은 항상 도둑들의 표적이 된다며 개 키우기, 방범 카메라 또는 사이렌 설치 등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근처의 작은 교회 목회자는 봉투를 주고 갔는데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일반 근로자의 한 달 월급이다. 감사히 받아쓰고 두 주 후에 갚았다. 우리의 친구인 ‘수잔’이라는 젊은이는 밤마다 와서 자고 간다. 여간 든든하고 고마워서 적절한 사례를 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쓸 데 없다는 말이 아니다. 외양간을 고쳐서 또 소를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일 후에 창문에는 경보기를, 그리고 현관문에는 쇠 빗장을 설치했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놀라서 반쯤 얼이 빠진 상태였긴 하지만 우리가 절대 약자인 상황에서 무슨 배짱으로 특수 강도들과 협상을 시도하고 약속을 촉구하다니…. 우리가 경찰에게 신고를 안 하면 그들이 다시 안 오고, 이제 신고를 했으니 또 올까봐 전전긍긍할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안보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나라는 항상 외침에 시달려왔고 지정학적으로 국가 안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국방은 충분히 안전하다고 방심할 수 없다. 튼튼해 보였던 현관 자물쇠는 강도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 못했다.
또 동맹국에 너무 의존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네팔 청년이 건장하고 신실하지만 밤새 눈 뜨고 우리 집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못 오는 날도 있다. 나의 안전을 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특단의 대책을 가지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국가의 안보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도둑이 든 후에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 아니라 내 집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한다.
이런 비 오는 날은 도둑이 들 수도 있다며 현관에 불까지 훤히 밝혀 놓았건만 이들은 당당히 현관문을 통해 들어왔다. 인기척에 놀라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강도다(We are robbers.)” 라고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들이닥쳤다.
강도들은 나가면서, “자이머시, 부라더” 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 후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 만일 신고하면 다시 와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네팔인의 인사는 “나마스떼”이고 “자이머시(예수 승리)”는 크리스천 인사이다. 나는 그자 뒤에 대고 “그럼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소리쳤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경찰 신고를 안 할 생각으로 옷가지들을 치우고 방을 정리했다. 놈들의 협박도 무서웠고 이곳 경찰에게서 별 도움을 받을 거란 기대도 들지 않았다.
아침에 집 주인에게 연락하니 단숨에 달려와서 경찰에 신고하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한다고 했다. 경찰 두 팀이 왔고 사진을 찍고 조서 작성에 들어갔다. 야간에 흉기를 든 다수는 특수 강도의 세 요건을 두루 갖춘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 집을 궁금해 하던 동네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수박과 텃밭에서 딴 오이를 낮 손님들에게 대접하느라 바빴다.
경찰은 100번으로 전화하면 즉시 달려온다 했고, 동네 분들은 이는 아는 자들의 소행이고 외국인들은 항상 도둑들의 표적이 된다며 개 키우기, 방범 카메라 또는 사이렌 설치 등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근처의 작은 교회 목회자는 봉투를 주고 갔는데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일반 근로자의 한 달 월급이다. 감사히 받아쓰고 두 주 후에 갚았다. 우리의 친구인 ‘수잔’이라는 젊은이는 밤마다 와서 자고 간다. 여간 든든하고 고마워서 적절한 사례를 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쓸 데 없다는 말이 아니다. 외양간을 고쳐서 또 소를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일 후에 창문에는 경보기를, 그리고 현관문에는 쇠 빗장을 설치했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놀라서 반쯤 얼이 빠진 상태였긴 하지만 우리가 절대 약자인 상황에서 무슨 배짱으로 특수 강도들과 협상을 시도하고 약속을 촉구하다니…. 우리가 경찰에게 신고를 안 하면 그들이 다시 안 오고, 이제 신고를 했으니 또 올까봐 전전긍긍할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안보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나라는 항상 외침에 시달려왔고 지정학적으로 국가 안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국방은 충분히 안전하다고 방심할 수 없다. 튼튼해 보였던 현관 자물쇠는 강도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 못했다.
또 동맹국에 너무 의존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네팔 청년이 건장하고 신실하지만 밤새 눈 뜨고 우리 집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못 오는 날도 있다. 나의 안전을 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특단의 대책을 가지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국가의 안보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도둑이 든 후에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 아니라 내 집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