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화순 용암사 주지스님]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2018년 06월 22일(금) 00:00
최근 방영된 1박2일은 ‘멤버들의 단점 극복 프로젝트’ 편이었다. 멤버 중 한 명인 정준영이 1일 PD가 되어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했다. 기상 미션으로 포장된 데프콘과 조보아와 깜짝 브런치 타임은 기존 기상 미션의 틀을 넘어서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정식 피디도 아닌 연예인이 모든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했다. 그것도 덜렁덜렁해 보이는 스물아홉 살 청년이 말이다.

KBS방송국 PD가 되려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합격하더라도 1박2일 같은 골든 타임 프로그램의 PD가 되려면 상당한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일 자체는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실제 TO(정원)가 몇 개 되지 않을 뿐, 달리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니까 한군데 박혀 있지 않고 굴러다니는 돌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자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는.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속담의 원래 의미는 ‘많이 떠돌아다니거나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니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소위 ‘제도권’이 있기 마련이다. 해당 분야의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비로소 돈과 명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힘, 즉 권력이 부여된다.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정체된 사회에서 제도권에 들어가려면, 제도권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이 조건은 해당 분야의 능력과 관련이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다. 걸러내는 것이 중요할 뿐,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소위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려면 우선 ‘내부자’로 자신을 자리매김 해야 한다. 각종 관습, 정서, 문화, 상식, 전통, 위계질서 등 ‘내부’를 지탱하는 모든 것에 충성해야 한다. 나아가 내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내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의 헌신과 노력이 곧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내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런 대다수의 내부자들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을 떠나 자신의 운명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 우물만 파라’는 표현의 현실적 의미는 몸도 마음도 확실하게 ‘내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자’에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몸도 마음도 ‘내부’에 있다 보니 밖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 곳에 박혀서 이끼가 잔뜩 낀 돌은 밖을 보지 못한다.

‘경계인’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에 거주하며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에 있다는 의미에서 경계인이라 자신을 칭했던 송두율 교수로 인해 유명해진 단어다. 기실 경계인의 특성은 재일 한국인들에게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일본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귀화하지 않는 이상 ‘국외자’로 취급받는다. 그들은 조선, 대한민국, 일본 그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정준영의 나이를 검색하다가 그의 특이한 이력을 알게 되었다. 19세에 한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미국, 인도네시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필리핀, 일본 등 숱한 나라를 전전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어린 나이에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언어의 장벽’을 깨달았고, 일찌감치 외로운 일이 있어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도 고백했다. 정준영은 경계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어쩌면 정준영에게 경계인 특유의 관찰력이 있었기에 이번 1박2일이 가능했었는지도 모른다.

경계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피난처 삼아 의지하고 진리를 피난처 삼아 의지하라”고 하신 부처님 역시 경계인이었다. 아니다.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돌아가신 부처님은 몸도 마음도 오롯하게 경계인이었다.

주체적인 마인드와 균형 잡힌 감각은 경계인의 중요한 덕목이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은 경계인적 심성을 갖추기 위해 현대인이 새겨야 할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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