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출신이 아니면서도 전라도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이 다산 정약용(1762∼1836)이었다. 조선의 천재 3형제라고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의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향이 해남이었다. 다산은 바로 전라도의 외손으로 태어난 것이다.
해남 윤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당연히 고산 윤선도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는 조선 시대 ‘3원3재’(三園三齋) 화가의 한 사람이자 뛰어난 학자로서 실학의 방향을 모색했던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다산의 어머니는 바로 윤두서의 손녀였으니 다산은 공재의 외증손자였다.
“공재 이후로 다산의 외가엔 숨어서 연구하던 실학자들이 많았다”(위당 정인보)라고 말해지듯이 그런 외가의 피를 이어받은 다산이 조선 실학사상의 집대성자가 되었음은 뿌리의 한쪽에 전라도 혼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라도의 혼과 피를 이어받은 다산은 16세 때인 1777년 9월에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이 전라도 화순 현감으로 발령이 나자 아버지를 따라 10대 후반의 꽃다운 세월을 화순에서 보낸다. 적벽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물염정의 뛰어난 경관에 감탄하고, 서석산(무등산)에 올라 ‘야호!’를 외치며 젊음의 기개를 마음껏 펴 보기도 했다.
다산은 17세이던 1778년 겨울에는 중형 정약전과 함께 화순 만연사 곁에 있는 그윽하고 경치 좋은 동림사(東林寺)에서 40일이 넘도록 경전(經傳) 연구로 독서삼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때 젊은 두 형제는 ‘서경’(書經)과 ‘맹자’(孟子)를 공부하면서 요순시대라는 이상 사회를 꿈꾸었다. 그리하여 눈 오는 밤에 잠 못 이루며 끝없는 토론을 계속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들 형제는 역시 선각자였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18세 되던 다음 해인 1779년 2월 초, 두 형제는 과거 시험을 위해 한양으로 가느라 화순을 떠난다. 화순으로 내려올 때는 공주-전주-담양을 거쳐 화순에 이르렀으나, 한양으로 가는 길에는 광주-장성-순창을 거쳐 서울로 향했으니, 이 때 바로 다산은 최초로 광주 땅을 밟았던 것이다.
당시 다산이 광주를 지나면서 남긴, ‘경양방죽을 지나며’라는 한 편의 시가 있다. 광주의 태봉산을 깎아서 그 흙으로 메워 버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경양방죽, 끝없이 넓고 컸던 그 방죽으로 광주·광산 일대의 들판에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었다는 다산의 시에서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 저수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 동안 서울에서 지내던 다산은 그해 9월, 아내까지 데리고 화순의 아버지를 뵈러 다시 전라도를 찾는다. 성환-공주-장성-광주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생애 두 번째로 광주를 찾게 된 이때 다산은 ‘두 번째로 광주를 지나며’(重過光州)라는 멋진 시 한 수를 짓는다.
“광주를 지날 때마다(每過光山府)/ 마음속엔 정금남 생각이로다(長懷鄭錦南)/ 신분이야 구종직처럼 미천해도 (地如從直劣)/ 재주는 이순신과 견주었네(才比舜臣堪)/ 옛날 사당엔 풍운의 기운 어렸고(古廟風雲氣)/ 유적지에서는 부로들이 전설 전하네(遺墟父老談)/ 웅장한 무등의 진산(鎭山)에서(雄哉瑞石鎭)/ 정기 모아 기특한 사나이 태어났네(亭毒出奇男)”
광주를 지나면 생각나는 사람이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이순신 장군의 재주에 맞먹는 정충신(鄭忠信:1576∼1636) 장군이라니 이게 간단히 넘어갈 내용인가. 세종 때 낮은 신분이었지만 뛰어난 재주와 능력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좌찬성에 오른 문장가·역학자·경학자이던, 구종직(丘從直)처럼 신분은 낮았어도 재능은 이순신에 맞먹던 정충신 장군.
호는 만운(晩雲)이요 고려시대의 명장 정지(鄭地) 장군의 후손인 그는 임진왜란 때에는 권율 장군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큰 공을 세웠다. 또 평양의 행재소로 가서 백사 이항복의 제자가 되어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 때 이괄의 난에는 탁월한 지략으로 진무공신 1등에 오르기도 했다. 금남군(錦南君)의 군봉을 받아 천하에 이름을 날렸고 죽은 뒤에는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문무를 겸비한 시대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충신은 누가 뭐라 해도 충장공 김덕령과 금남군 정충신이다. 그래서 광주의 중심 도로는 충장로와 금남로로 이름이 지어졌다. 이런 역사적 위인을 잊고 지내는 우리가 부끄럽다. 다산조차 추앙했던 금남군, 왜 이순신만 충무공으로 숭배하고 충무공 정충신은 현향할 줄 모른단 말인가.
해남 윤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당연히 고산 윤선도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는 조선 시대 ‘3원3재’(三園三齋) 화가의 한 사람이자 뛰어난 학자로서 실학의 방향을 모색했던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다산의 어머니는 바로 윤두서의 손녀였으니 다산은 공재의 외증손자였다.
다산은 17세이던 1778년 겨울에는 중형 정약전과 함께 화순 만연사 곁에 있는 그윽하고 경치 좋은 동림사(東林寺)에서 40일이 넘도록 경전(經傳) 연구로 독서삼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때 젊은 두 형제는 ‘서경’(書經)과 ‘맹자’(孟子)를 공부하면서 요순시대라는 이상 사회를 꿈꾸었다. 그리하여 눈 오는 밤에 잠 못 이루며 끝없는 토론을 계속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들 형제는 역시 선각자였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다산이 광주를 지나면서 남긴, ‘경양방죽을 지나며’라는 한 편의 시가 있다. 광주의 태봉산을 깎아서 그 흙으로 메워 버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경양방죽, 끝없이 넓고 컸던 그 방죽으로 광주·광산 일대의 들판에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었다는 다산의 시에서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 저수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 동안 서울에서 지내던 다산은 그해 9월, 아내까지 데리고 화순의 아버지를 뵈러 다시 전라도를 찾는다. 성환-공주-장성-광주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생애 두 번째로 광주를 찾게 된 이때 다산은 ‘두 번째로 광주를 지나며’(重過光州)라는 멋진 시 한 수를 짓는다.
“광주를 지날 때마다(每過光山府)/ 마음속엔 정금남 생각이로다(長懷鄭錦南)/ 신분이야 구종직처럼 미천해도 (地如從直劣)/ 재주는 이순신과 견주었네(才比舜臣堪)/ 옛날 사당엔 풍운의 기운 어렸고(古廟風雲氣)/ 유적지에서는 부로들이 전설 전하네(遺墟父老談)/ 웅장한 무등의 진산(鎭山)에서(雄哉瑞石鎭)/ 정기 모아 기특한 사나이 태어났네(亭毒出奇男)”
광주를 지나면 생각나는 사람이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이순신 장군의 재주에 맞먹는 정충신(鄭忠信:1576∼1636) 장군이라니 이게 간단히 넘어갈 내용인가. 세종 때 낮은 신분이었지만 뛰어난 재주와 능력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좌찬성에 오른 문장가·역학자·경학자이던, 구종직(丘從直)처럼 신분은 낮았어도 재능은 이순신에 맞먹던 정충신 장군.
호는 만운(晩雲)이요 고려시대의 명장 정지(鄭地) 장군의 후손인 그는 임진왜란 때에는 권율 장군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큰 공을 세웠다. 또 평양의 행재소로 가서 백사 이항복의 제자가 되어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 때 이괄의 난에는 탁월한 지략으로 진무공신 1등에 오르기도 했다. 금남군(錦南君)의 군봉을 받아 천하에 이름을 날렸고 죽은 뒤에는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문무를 겸비한 시대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충신은 누가 뭐라 해도 충장공 김덕령과 금남군 정충신이다. 그래서 광주의 중심 도로는 충장로와 금남로로 이름이 지어졌다. 이런 역사적 위인을 잊고 지내는 우리가 부끄럽다. 다산조차 추앙했던 금남군, 왜 이순신만 충무공으로 숭배하고 충무공 정충신은 현향할 줄 모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