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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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엄동설한에도 따뜻한 구들방에서 나누는 옛이야기는 겨울을 보내는 삶의 지혜였다. 예전의 정취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지만, 여전히 옛이야기의 구수함은 폭설과 강추위를 잊기에 제격이다. 소일거리로 찾아든 설화집을 넘기다 보니 과거(科擧)와 관련된 이야기가 눈에 띈다.
숙종 임금이 야행(夜行) 중에 태학관의 한 방만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기에 찾아가 보았다. 사촌 형제 둘이 글을 한참 읽다가, 종제(從弟)가 문득 형에게 자기 장가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첫날밤에 각시가 아기를 낳았는데, 발설하면 산모와 아기가 위태로울 듯해서 아기를 백양교 밑에 숨겨 놓고 사람을 보내 대고모 댁에서 기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를 엿들은 숙종 임금은 다음날 별시(別試)를 시행하며 시제(試題)를 ‘백양교하(白楊橋下)에 득옥동자(得玉童子)하여 양탁어대고모댁(養託於大姑母宅)’으로 내걸었다.
이후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터이다. 시제의 내력을 아는 형제의 급제는 당연지사다. 요즘으로 치자면 일종의 특채가 이뤄진 셈이다. 그것도 불공정한 특혜를 통해서 말이다. 과거 시험은 신분 차별을 뛰어넘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시험이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미담처럼 이야기가 전승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중이 기대하는 왕권의 바람직한 실현상을 설화적 상상력을 통해 구현한 것이 임금의 야행 설화라는 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에는 사회에 필요한 참된 인재 발탁과 관련한 우리 조상들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태학관에서 글을 읽을 정도의 선비면 가난하거나 억울한 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위해 임금이 실시한 별시를 긍정시한 이유는 이들이 인재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558년(명종 13년) 생원회시(生員會試)의 책문(策問)은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인재 양성 방법’에 대해 논하는 것이었다. 이때 급제한 조종도(趙宗道)는 당대의 교육이 글을 외고 읊으며 글과 문장을 다듬어 벼슬과 봉록을 구하는 방법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교육이란 ‘처음에 효도와 공경과 충직과 신뢰를 가르치고, 끝에 가서는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행실을 바로잡고 지적인 성숙을 도와주어 학문의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고 깊이 젖어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도 유효한 깨우침이다. 군둘라 엥리슈(Gundula Englisch)는 ‘잡노마드 사회’에서 기존의 교육을 목표 지향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즉, 학교 졸업 후 취직을 목표로 하고, 목표가 이뤄짐과 동시에 교육 과정이 끝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새롭고 특이한 것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며 탐구적인 자세로 내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마디로 ‘배우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 능력과 협동 능력, 팀워크 정신과 설득력 같은 창의적이며 유연한 태도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식으로 전체와 어울려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옛날 선비들이 꼭 익혀야 할 덕목으로는 육예(六藝)라 하여,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꼽았다. 예절, 즉 인간다움이 가장 먼저요, 글쓰기와 셈은 끝에 있었다.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먼저 살필 줄 아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나아가 위기 상황을 해결할 방책을 슬기롭게 강구할 줄 알았던 옛이야기 속의 선비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참된 인재상으로,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과도 여지없이 부합한다.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감성과 공감 능력은 미래 사회에서도 더욱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앞으로의 교육은 교육의 근본인 인간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협력과 나눔을 통한 다양한 경험 속에서 올바른 인성과 협력적 배려심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옛이야기에서 찾아본다.
숙종 임금이 야행(夜行) 중에 태학관의 한 방만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기에 찾아가 보았다. 사촌 형제 둘이 글을 한참 읽다가, 종제(從弟)가 문득 형에게 자기 장가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첫날밤에 각시가 아기를 낳았는데, 발설하면 산모와 아기가 위태로울 듯해서 아기를 백양교 밑에 숨겨 놓고 사람을 보내 대고모 댁에서 기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를 엿들은 숙종 임금은 다음날 별시(別試)를 시행하며 시제(試題)를 ‘백양교하(白楊橋下)에 득옥동자(得玉童子)하여 양탁어대고모댁(養託於大姑母宅)’으로 내걸었다.
1558년(명종 13년) 생원회시(生員會試)의 책문(策問)은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인재 양성 방법’에 대해 논하는 것이었다. 이때 급제한 조종도(趙宗道)는 당대의 교육이 글을 외고 읊으며 글과 문장을 다듬어 벼슬과 봉록을 구하는 방법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교육이란 ‘처음에 효도와 공경과 충직과 신뢰를 가르치고, 끝에 가서는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행실을 바로잡고 지적인 성숙을 도와주어 학문의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고 깊이 젖어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도 유효한 깨우침이다. 군둘라 엥리슈(Gundula Englisch)는 ‘잡노마드 사회’에서 기존의 교육을 목표 지향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즉, 학교 졸업 후 취직을 목표로 하고, 목표가 이뤄짐과 동시에 교육 과정이 끝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새롭고 특이한 것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며 탐구적인 자세로 내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마디로 ‘배우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 능력과 협동 능력, 팀워크 정신과 설득력 같은 창의적이며 유연한 태도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식으로 전체와 어울려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옛날 선비들이 꼭 익혀야 할 덕목으로는 육예(六藝)라 하여,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꼽았다. 예절, 즉 인간다움이 가장 먼저요, 글쓰기와 셈은 끝에 있었다.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먼저 살필 줄 아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나아가 위기 상황을 해결할 방책을 슬기롭게 강구할 줄 알았던 옛이야기 속의 선비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참된 인재상으로,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과도 여지없이 부합한다.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감성과 공감 능력은 미래 사회에서도 더욱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앞으로의 교육은 교육의 근본인 인간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협력과 나눔을 통한 다양한 경험 속에서 올바른 인성과 협력적 배려심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옛이야기에서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