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영 순천 매곡동성당 주임신부] 대화를 ‘잘’ 하는 방법, 침묵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여러분은 몇 명의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십니까? 필자의 경우엔 시골 본당신부로 살았던 2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이지만 어느 누구와도 만나거나 대화하지 않고 지낸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 본당으로 발령을 받은 후에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과의 대화는 매우 즐겁지만, 어떤 이들과의 대화는 참 힘이 듭니다.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들과의 어쩔 수 없는 만남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 가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화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하지만 대화가 꼭 즐거움만을 주지는 않습니다.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의 경우나,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의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대화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아이러니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침묵입니다. 침묵해야만 그에게 충분히 집중하고 그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들어야만 서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을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말을 침묵 중에 잘 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중요한 신심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바로 침묵입니다. 기도 역시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하느님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세기의 수도승들은 침묵을 잘 지키기 위한 외적인 준비로서 독방에 오래 머무를 것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사막의 성인으로 불리는 안토니오는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 있다면 죽은 목숨이듯 수도승들도 그들의 독방 바깥에서 오래 지체한다면 혹은 세상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그의 영혼은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홀로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단 5분만이라도 침묵 속에서 고요히 머무를 때, 출렁거리던 마음의 물결은 잔잔해지고, 참 평화와 어떤 어려움들도 이겨 낼 수 있는 지혜가 우리 안에서 움터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침묵 중에 홀로 머무르는 시간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우리들의 영혼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영혼이 약해지면, 내적으로 불안해지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 바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유익하고 기쁨이 되는 말이 아니라, 남을 해치는 말, 모함하고 비꼬는 말들을 함으로써, 저녁이 되어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을 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막의 교부였던 압바 포에멘은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겉보기에 침묵을 지키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타인을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온종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 그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해야 할 말인데도 하지 않거나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참된 침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입니다. 그동안 알아 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도 만나고 대화할 때 침묵의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침묵할 때만이 상대방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으며, 침묵할 때만이 상대방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쏟아 내는 한 해가 아니라 깊은 침묵을 통해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말을 하는, 그럼으로써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2018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중요한 신심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바로 침묵입니다. 기도 역시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하느님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세기의 수도승들은 침묵을 잘 지키기 위한 외적인 준비로서 독방에 오래 머무를 것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사막의 성인으로 불리는 안토니오는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 있다면 죽은 목숨이듯 수도승들도 그들의 독방 바깥에서 오래 지체한다면 혹은 세상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그의 영혼은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홀로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단 5분만이라도 침묵 속에서 고요히 머무를 때, 출렁거리던 마음의 물결은 잔잔해지고, 참 평화와 어떤 어려움들도 이겨 낼 수 있는 지혜가 우리 안에서 움터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침묵 중에 홀로 머무르는 시간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우리들의 영혼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영혼이 약해지면, 내적으로 불안해지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 바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유익하고 기쁨이 되는 말이 아니라, 남을 해치는 말, 모함하고 비꼬는 말들을 함으로써, 저녁이 되어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을 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막의 교부였던 압바 포에멘은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겉보기에 침묵을 지키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타인을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온종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 그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해야 할 말인데도 하지 않거나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참된 침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입니다. 그동안 알아 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도 만나고 대화할 때 침묵의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침묵할 때만이 상대방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으며, 침묵할 때만이 상대방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쏟아 내는 한 해가 아니라 깊은 침묵을 통해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말을 하는, 그럼으로써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2018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