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규 원불교 사무국장] 추석, 귀성과 성묘의 의미
2017년 09월 29일(금) 00:00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온다. 지난 한해 숨가쁘게 달려온 모든 이들에게 아마도 올 추석은 어느해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듯하다.

추석은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다.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들이 사용하던 중추와 월석이란 말을 축약하여 추석이라 하였다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던 것은 추석이 얼마나 우리에게 넉넉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올해 추석은 길어진 탓에 해외 여행자가 100만 명이 넘을 것이라 한다. 과거의 명절 분위기는 식었지만 그래도 추석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명절임에 틀림없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선조들이 천년이 넘도록 명절로 정해 지내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추석은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도 밸런타인데이나 부활절 같은 명절이 있다. 밸런타인데이는 로마시대 천주교 박해 당시 순교한 발렌티누스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처럼 서양의 명절은 거의 종교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명절은 자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과 달을 중심으로 제비와 까치 등 우리의 명절에는 자연이 있다.

농부들에게 있어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삶의 일부였다. 농부들이 모두 가지고 있던 자연의 법칙 중 하나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과보응이다. 우리 어른들이 추석에 어린아이들에게 항상 하던 말이 ‘착하게 살아라’는 말이다. 선한 행동을 하는 이는 선한 업보를 받고, 악한 행동을 하는 이는 악한 업보를 받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면서 우리 삶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가져다준다. 추석을 통해 다시금 지은 만큼 받는다는 사실을 되새겼으면 한다.

둘째는, 추석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감사를 올리며 귀소본능의 본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귀성’이라는 의미를 알게 해준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과 가족, 친지들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추석은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고향은 지역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 우리를 가르쳐주신 스승님, 나를 지탱해준 친구들, 이런 모든 것들의 총체적인 개념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고향을 잊은 사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쓰러진다.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석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고 찾아야 한다. 이를 계기로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귀성의 본래 의미다.

마지막으로 추석은 성묘를 통해 조상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조상과의 만남은 조상에 대한 감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결국 그 근원은 조상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조상에 대한 감사는 결국 내 삶의 주변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현재 내 삶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상에 대한 감사보다는 원망이 나온다. 그래서 차례를 올릴 때 조상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주변의 인연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배우자, 나의 자녀, 나의 동료 등 지금 나를 있게 한 이들에게 말이다. 그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조상님들께 드리는 가장 최고의 차례상이 될 것이다.

요즘 가수 김광석씨의 딸 서연 양의 죽음에 대한 보도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생각하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보도된 뉴스는 우리에게 다시금 가족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지 모른다.

아무쪼록 긴 추석 연휴에 가족, 친지들과 따스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한숨짓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넉넉함이 함께하는 추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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