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역사의 우민화를 경계함
2017년 09월 28일(목) 00:00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역사에 아주 밝았다. 태조 2년(1393)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개국 1등공신인 이화(李和)가 궁궐에 들어가려 하자 박자청(朴子靑)이 막았다. 화가 난 이화가 박자청의 면상을 발로 찼어도 막무가내로 들이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이화를 꾸짖었다.

“옛날 주아부(周亞夫)의 세류영(細柳營)에서는 장군의 명만 받을 뿐 천자의 조서도 듣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박자청이 이런 것으로서 네가 한 일은 옳지 않다.”

주아부는 한(漢)나라 개국공신 주발(周勃)의 아들로서 세류영을 맡고 있었는데, 문제(文帝)가 방문했을 때도 신부(信符)를 보이기 전까지 진영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가 “참 장군(眞將軍)이구나!”라고 감탄했다는 기록이 ‘한서’(漢書) 등에 남아 있다. 이성계가 주아부 사례를 들어서 이화를 꾸짖었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에 밝았다는 뜻이다.

영조는 재위 5년(1729) 신하들과 ‘동사’(東史)를 진강(進講)했다. 신하가 역사 강의를 하고 국왕과 토론했다는 뜻이다. 이날 주제는 김부식이 규고를 논한 대목이었다. 규고란 부모가 병이 났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먹이는 것을 뜻하는데, 영조는 “명 태조가 금령(禁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명 태조 주원장이 규고를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명나라 강백아(江伯兒)는 병난 어머니에게 자신의 갈빗살을 베어 먹였는데도 낫지 않자 신에게, “어머니가 낫는다면 내 자식을 죽여서 사례하겠다”고 기도했다. 그 후 어머니가 낫자 실제로 세 살 난 아들을 죽여 신에게 바쳤는데 명 태조가 이를 듣고 윤리를 끊은 행위라면서 곤장을 친 후 귀양을 보내고 규고를 금지시킨 것을 뜻한다. 성호 이익은 ‘강백아가 제 살을 베어 어머니를 먹인 일’(江伯兒割脅肉)이란 글에서 ‘여동록’(餘冬錄)을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이런 사례들은 조선의 임금과 신하·선비들이 모두 역사에 해박했음을 말해 준다.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이 고향의 자식들에게 조선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편지를 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는 임금부터 시골 선비들까지 모두가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이었다.

그런데 일제의 한국 강점 이후 이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 강점 직후 한국사 왜곡에 나서는 한편 역사를 일반 국민과 분리시키는 우민화 정책을 썼다. 자신들이 만든 역사만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를 소수의 역사학자만의 전유물로 격하시켰다.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한국사의 시간을 축소하는 것으로서 단군의 실재성을 부인하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아 반만년 한국사를 1500여 년 역사로 축소시켰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의 공간을 축소하는 것으로서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사의 공간에서 대륙과 해양을 잘라 버리고 반도의 역사로 축소시켰다. 그 반도의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漢四郡)이, 반도의 남쪽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독립운동의 의지를 약화시켰다.

해방 후 친일 청산에 실패하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하면서 총독부에서 만든 역사를 학교에서 계속 가르쳤다. 이들은 총독부의 역사 우민화 정책을 계승해 역사를 마치 소수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독점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아직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한사군=한반도 북부설’과 ‘임나=가야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만약 해방 후 대통령과 정치가 및 관료들이 조선 시대처럼 역사에 밝았다면 이런 반역사적인 상황은 벌써 종식되었을 것이다. 역사를 소수의 역사학자들의 전유물로 만든 역사 우민화 정책이 식민사학의 가장 중요한 생존술이다.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소수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역사를 구출해 모든 국민의 상식으로 만드는 것, 국민의 세금으로 식민사학을 전파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 이런 당연한 일들이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어야 할 시점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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