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출세하라”
2017년 09월 20일(수) 00:00
대한민국 중소상공인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GAP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GAP’을 입고 ‘나는 갑이다’고 소리치고 싶기 때문이다. 시중에 떠도는 유머 한 토막이지만 평생을 ‘을’로 살아야 하는 중소상공인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갑질에 대한 이슈가 뜨겁다. 프랜차이즈 갑질, 기업 회장의 갑질, 회사 내의 갑집, 공관병에 대한 갑질까지 도처에서 불거지고 있다.

‘공관병 갑질 사건’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고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지난 7월에 ‘국정 운영 5개년 계획’과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갑질 근절’에 적극 나설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뿌리 깊은 갑질 문화가 이참에 어느 정도 개선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잡코리아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갑질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사하는 바가 크다. ‘갑질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88.6%인데 ‘본인이 갑질을 해본 적이 있다’는 33.3%로 나타났다. 당한 사람은 많은데 때린 사람은 적다. 바로 갑질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 차이다. 부지불식간에 갑질을 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게 진짜 문제다.

기업과 기업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직원들은 직무상 하도급업체를 쪼는 것이지 갑질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7월 열린 중소 사업자 단체 간담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실제 하도급법을 위반한 사업자의 약 79%가 중소 사업자”라며 “중소 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무조건적인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갑’은 ‘을’에게, 다시 ‘을’은 ‘병’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이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 대한 갑질은 대한민국의 자연스런 형태로 인식되고 있는걸까?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갑질에 대한 역사는 꽤 길다. 6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 ‘회전의자’ 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빙글 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세태를 정확하게 표현해서인지 크게 히트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으면 이런 노랫말이 나왔을까? 한편으로 이해도 되지만 이렇게 대놓고 출세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당시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소연하면,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네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길은 성공하는 길 뿐이다. 이를 악물고 참아라. 그리고 성공해라.”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아니라 무조건 참고 이겨내라는 것이다. 이 무슨 되지도 않을 소리란 말인가.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이 공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또다시 갑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다. 성공 지상주의가 낳은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제도적 장치와 함께 내부 성찰을 병행해야 갑질을 근절할 수 있다고 본다.

갑질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렇게 적폐를 노출시켜서 고쳐나가면 공정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이런 현상에 익숙하게 살아왔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동시에 부지불식간에 했던 행동이 누구에게는 갑질에 해당되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많이 된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60년대 노랫말과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갑질’은 맥이 같다고 생각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로 마무리한다. “진정으로 그 사람의 본래 인격을 시험해 보려거든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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