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2호선 종합운동장역 8번 출구 앞에서
주말이 가까웠지만 어쨌든 평일 저녁이다. 3만 명에 가까운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구장의 입구에 나는 서 있다. 2호선 종합운동장역 8번 출구. 정면에 잠실구장의 3루 측 외야의 거대한 바깥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로부터 열흘 전, 나는 원하는 좌석을 예매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포수 뒤편이나 응원단상 앞 또는 ‘익사이팅 존’ 같은 인기 있는 자리를 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야 어딘가, 주로 상황이 벌어지는 내야 가까운 곳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슬쩍하는 예매, 잠시 업무상 통화를 하느라 정각에 접속하지 못했고 그사이에 수많은 기아 팬들은 금요일 밤을 잠실에서 보낼 계획을 완성해 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사라져가는 자리를 모니터를 통해 망연히 지켜보던 나로서는 외야 자리라도 예매한 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른바 원정 팬이 되어 버린 건 광주를 떠난 2009년부터다. 그렇다 2009년. 기아가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 한국시리즈마저 제패했으며, 심지어 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결정지은 한 해다. 그때 나는 불광동에 월세를 찾아다니며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실감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길을 잃을까 봐 노선도를 골똘히 노려보며 지금의 내 위치를 확인했다. 고향과는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발을 맞추려 무릎에 힘을 주었다. 배움을 위해, 좋은 직장을 위해, 또는 다른 이유로 서울로 올라온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지만 우리 모두에게 어딘가는 고향이고 그 외에 많은 곳은 타향이니까. 조금은 외로웠을 것이다. 가끔은 서러웠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야구는 참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온 동네 식당마다 기아 야구 중계에 채널이 맞춰져 있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너나 나나 한 팀을 응원하는 도시에서의 느낌과는 달랐다. 원정(타향)의 팬이 받아들이는 각별한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친구들은 늦었다. 대학 수업 마치고 한가한 시간에 무등구장을 찾아 일찍이 자리를 잡고 맥주나 마시던 무리들이 어느새 서울의 직장인이 되어 퇴근길 러시아워에 몸을 싣는다. 잠실에서 가까운 순서로 전철 출구 앞에 모인다. 자판에서 파는 응원 도구가 홈팀의 것보다 노란색 기아의 것이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빨갛고 하얀 유니폼에 양현종이며 김선빈, 안치홍 등 인기 선수의 이름을 마킹한 팬들이 설레는 발걸음을 옮긴다.
일행을 기다리는 김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충동구매, 빨간색 유니폼 하나를 골랐다. 마킹은 고민 끝에 ‘이명기’로 한다. 데뷔 후 줄곧 인천에서만 야구를 하다 올해 광주에 온 선수다. 트레이드 후 첫 경기에서 수비 실수를 했는데 그걸 텔레비전으로 보던 나는 주저함 없이 욕을 했다. 어디서 저런 선수가 왔어! 지금은 같은 말인데 뉘앙스가 완전히 바뀐 채 자주 감탄한다. 어디서 저런 (훌륭한) 선수가 왔어! 한때 비난했던 미안함에 카드를 긁는 손이 아주 당당하다.
올해는 오랜만에 이기는 날이 많은 시즌이다. 그것도 꽤 많이 이겨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잠실구장의 원정 팬들은 3루 측 외야석은 물론이고 전광판을 기준으로 1루 쪽으로도 꽤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저들도 나처럼 가끔은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일까.
꼭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더라도 그냥 기아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빨간 유니폼을 입고 습한 여름 저녁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작정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빨간 옷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보내는 동안 경기는 진행되었고, 기아는 또 승리를 챙겼다. 이명기는 안타도 쳤고, 약점이라던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등에 새긴 이름을 강조하며 내가 선수라도 된 것 마냥 의기양양했다. 경기 후 잠실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시간대를 가리지 않는 교통 정체도 여전했지만, 위안을 받았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위안을 받을까 싶지만 광주를 떠나 서울 근처에 자리를 잡은 이후 나를 가장 위안했던 것은 결국 이 공놀이였다.(물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서울에 기아 팬이 이렇게나 많은 데에는 분명 정치·사회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나의 직업인 출판업만 따져 보더라도, 대한민국 출판사 대부분이 서울과 서울 근처에 놀랍도록 집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좋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좋은 직장을 위해 서울로, 좋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수도권의 인구는 과밀해지고 지방 도시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잠실구장의 반 이상을 광주 연고지 구단의 팬이 채우는 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신천(잠실구장 근처 유흥가)에는 2009년의 기억을 간직한 채, 2017년의 우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그깟 공놀이에 환장하여, 그깟 공놀이에 위안을 받으면서.
<시인>
이른바 원정 팬이 되어 버린 건 광주를 떠난 2009년부터다. 그렇다 2009년. 기아가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 한국시리즈마저 제패했으며, 심지어 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결정지은 한 해다. 그때 나는 불광동에 월세를 찾아다니며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실감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길을 잃을까 봐 노선도를 골똘히 노려보며 지금의 내 위치를 확인했다. 고향과는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발을 맞추려 무릎에 힘을 주었다. 배움을 위해, 좋은 직장을 위해, 또는 다른 이유로 서울로 올라온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지만 우리 모두에게 어딘가는 고향이고 그 외에 많은 곳은 타향이니까. 조금은 외로웠을 것이다. 가끔은 서러웠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야구는 참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온 동네 식당마다 기아 야구 중계에 채널이 맞춰져 있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너나 나나 한 팀을 응원하는 도시에서의 느낌과는 달랐다. 원정(타향)의 팬이 받아들이는 각별한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일행을 기다리는 김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충동구매, 빨간색 유니폼 하나를 골랐다. 마킹은 고민 끝에 ‘이명기’로 한다. 데뷔 후 줄곧 인천에서만 야구를 하다 올해 광주에 온 선수다. 트레이드 후 첫 경기에서 수비 실수를 했는데 그걸 텔레비전으로 보던 나는 주저함 없이 욕을 했다. 어디서 저런 선수가 왔어! 지금은 같은 말인데 뉘앙스가 완전히 바뀐 채 자주 감탄한다. 어디서 저런 (훌륭한) 선수가 왔어! 한때 비난했던 미안함에 카드를 긁는 손이 아주 당당하다.
올해는 오랜만에 이기는 날이 많은 시즌이다. 그것도 꽤 많이 이겨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잠실구장의 원정 팬들은 3루 측 외야석은 물론이고 전광판을 기준으로 1루 쪽으로도 꽤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저들도 나처럼 가끔은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일까.
꼭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더라도 그냥 기아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빨간 유니폼을 입고 습한 여름 저녁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작정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빨간 옷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보내는 동안 경기는 진행되었고, 기아는 또 승리를 챙겼다. 이명기는 안타도 쳤고, 약점이라던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등에 새긴 이름을 강조하며 내가 선수라도 된 것 마냥 의기양양했다. 경기 후 잠실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시간대를 가리지 않는 교통 정체도 여전했지만, 위안을 받았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위안을 받을까 싶지만 광주를 떠나 서울 근처에 자리를 잡은 이후 나를 가장 위안했던 것은 결국 이 공놀이였다.(물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서울에 기아 팬이 이렇게나 많은 데에는 분명 정치·사회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나의 직업인 출판업만 따져 보더라도, 대한민국 출판사 대부분이 서울과 서울 근처에 놀랍도록 집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좋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좋은 직장을 위해 서울로, 좋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수도권의 인구는 과밀해지고 지방 도시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잠실구장의 반 이상을 광주 연고지 구단의 팬이 채우는 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신천(잠실구장 근처 유흥가)에는 2009년의 기억을 간직한 채, 2017년의 우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그깟 공놀이에 환장하여, 그깟 공놀이에 위안을 받으면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