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약수터 보존해야
2017년 06월 21일(수) 00:00
용산 약수터는 제석산 치마봉과 아리랑 고개 사이에 있는 자연약수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 동구 용산동에 소재한다. 봉선동 쪽에서 동아여고 뒷길을 따라 치마봉에 오른 후 아리랑고개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산자락 밑에 고즈넉이 돌아앉아 있다. 봄이면 밤꽃향기가 가득하고, 보라색 오동나무 꽃이 곱게 피는 광주의 몇 군데 안 남은 자연 약수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 한통 받으려면 십 여 미터씩 줄을 서야 하는 동구와 남구 주민들의 삶의 젖줄이자 생활의 쉼터였다.

옛 어른들에 의하면 피부병 환자나 나환자들까지도 그 물을 마시고 나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고, 더 옛날에는 효천면(남구쪽)과 효지면(동구쪽)의 경계에 있어 효천(孝泉)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구전(口傳)되는 유서 깊은 약수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고 용출량이 일정하며, 수질검사결과에 관계없이 그 물을 마시고 배탈 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약수터가 며칠 전 갑자기 사라졌다. 용산지구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면서 매립해 버린 것이다. 지난해 용산지구가 동구청과 LH공사에 의하여 아파트단지로 본격 개발되면서부터 폐쇄 조짐은 감지되었다. 첫 위기를 맞은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등산길에 보니 커다란 현수막에 용산 약수터를 2016년 8월15일부터 영구폐쇄 한다고 게시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주민들은 없애서는 안 된다고 모두 한마디씩 했다. 약수터를 영구 폐쇄한다니 그럼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 나 역시 그것을 본 순간 어떻게 하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동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소관 부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홈페이지에 ‘구청장에게 바란다’ 라는 배너가 있었다. 우선 거기에 약수터 보존을 건의키로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의도적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먼저 회원 가입을 해야 민원을 올릴 수 있었다. 회원가입을 하려니 아이핀(i-pin)을 통한 본인 인증이 필요했고 행자부 홈페이지에서 아이핀 발급을 받으려니 금융기관의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했다. 저절로 포기하길 바란 것 같았다. 그만둘까 하다 오기가 생겼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다행히 공인인증서가 있어 무려 2시간을 허비하고 ‘용산약수터를 살립시다’라는 민원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동구청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건의대로 용산약수터를 영구보존하기로 했다며 답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반가웠다. 동구청 관계자에게 수고했다며 홈페이지에 게시된 구청장 답변을 출력하여 치마봉 정자와 약수터 옆 게시판에 게시했다. 오가는 사람마다 그것을 보고 동구청의 약수터보존 방침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대로 보존되어 왔다. 물론 옛날의 모습이 아닌 약수터만 겨우 남기고 깔때기 모형으로 주변을 모두 매립한 보기 흉한 모습이었지만 아파트단지가 완공되고 나면 주변조경을 다시 할 것으로 믿고 모두가 기다렸다.

그러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5일 오후 용산약수터가 흔적도 없이 매립되어 버린 것이다. 동구청 재개발건축과에 전화를 해봤다. 담당자는 약수터 수질이 나빠 시민들의 안전에 위험이 있어 없앴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구청장도 알고 있을까? 영구보존 한다던 지난번 답변은 뭐고 이제 와서 약속을 뒤집고 일방적으로 없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구청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적(公的) 건의에 대한 구청장의 답변은 개인의 민원처리가 아닌 시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수질이 나쁘면 관리를 잘하면 되지 약수터 자체를 없앨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자연은 보존할 때 개발 이상의 혜택을 줄 때가 너무도 많다. 개발논리에 밀려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유적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시아 문화 허브를 꿈꾸는 동구청의 행정이 이렇게 근시안적이고 편의 지향적인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보존 의지만 있다면 매립한 흙을 다시 파내면 된다. 다행히 약수터는 아파트단지의 근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 아파트 건축에 전혀 지장이 없는 곳이다. 백여 평 정도만 약수터부지로 할애하여 아름답게 조성하고 보존한다면 향후 아파트단지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또 다른 광주의 명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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