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간속을 걷다-40 에필로그] 추억의 발걸음… 이젠 남도, 시간속을 걷는다
LP 판매점·시계 수리점·선술집 … 고택·서원까지
내세울 것 없다던 분들, 긴 세월 외길 인생이 ‘보석’
내년부터 독자와 함께 전남 추억의 공간 시간여행
2016년 12월 28일(수) 00:00
100년 넘은 화과자집과 모밀집, 수대가 이어온 종이집…. 수백년 가업을 이어온 일본의 ‘노포’(老鋪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 시간 속을 걷다’는 도심을 천천히 걸으며 시간의 보석함을 하나씩 열어본 기획으로 광주의 삶이 담긴 추억의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 이야기가, 우리 가게가 기사가 될까요?”

취재 요청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취재 대상들은 30∼50년 간 가게를 운영하며 묵묵히 살아온 분들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건 맞지만 딱히 내세울 게 없다는 게 그분들의 대답이었다. 취재원 대부분은 문서나 사진들을 남겨 놓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인생’이 담긴 가게와 함께 한 기억들은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시리즈를 진행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오래된 가게들을 찾는 일이었다. 자료를 뒤져 찾아낸 가게들이 이미 문을 닫아버린 경우도 많았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해온 이들에게 ‘가업’을 잇는 건 가장 큰 꿈이기도 하지만, 이미 사양길에 들어선 업종 때문에 쉽사리 자식들에게 권유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아들이 가업을 잇는 가게들은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40년 동안 묵묵히 소가죽 수제화를 제작해온 노틀담 제화 임종찬 사장이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3대가 이어가는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영발원. 역시 제과제빵을 공부한 아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는 궁전제과 등등.

취재를 하면서 추억을 하나 둘 꺼내 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대학시절 열심히 사모았던 LP판과 카세트 테이프를 떠올리게 해준 음반점 명음사, 초등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우표 수집에 대한 추억을 되새겼던 세계 우표사, 졸업식이면 꼭 먹었던 자장면을 기억하게 해준 영발원 등이다.

2년간 38회 시리즈에 다뤘던 공간들은 ‘다행스럽게’도 모두 계속 이어지고 있다. 81년 역사의 광주 극장 영사기는 여전히 돌아간다. 올해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극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시민 400여명이 후원회원으로 참여하며 극장에 대한 애정과 연대는 더욱 단단해 졌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 ‘베토벤’에서는 슈베르트와 말러의 음악이 공간을 메운다. 추억도 살리는 50년 시계 수리점 ‘용문사’의 일흔 아홉 사장님은 여전히 시계를 고치고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무등산장 오르는 길 무공해 두유집 사장 부부 역시 오늘도 맷돌에 콩을 갈고 있다.

선술집 ‘영흥식당’에선 가을이면 여전히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간다’는 전어가 구워지고, 막걸리 한 잔에 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다.

문화공간으로 개방된 100년 한옥 이장우 고택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으며 50년 역사의 활터 관덕정에서는 궁사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서서평의 흔적을 따라 걷는 양림동 선교사 유적지엔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이 갖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깬 월봉서원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오늘’과 호흡하고 있다.

2년 동안 광주 구석구석을 다녔던 발걸음을 이제 전남 지역으로 옮긴다. 2017년부터는 ‘남도, 시간 속을 걷다’라는 타이틀로 전라도 지역의 오래된 공간들을 찾아가 볼 작정이다. 혼자 걸었던 여정에 동행도 생겼다. 송기동 기자가 번갈아가며 전라도 구석구석, 추억의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사실, 광주 토박이라 도심 이곳 저곳에 얽힌 추억들을 갖고 있어 소재 찾기가 조금은 수월한 편이었다. 반면 전남 지역은 아무래도 낯선 곳이다. 독자들이 알고 있는 소중한 공간들을 소개해 주시라. 열심히 걷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뒤적이며 ‘시간의 보물창고’를 열어 보겠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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