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단국대 천안캠퍼스 교수] 행복 총량의 법칙
2016년 10월 26일(수) 00:00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에 총량이 있는 것일까? ‘지랄’에는 총량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돼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경북대 김두식 교수가 지은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법칙을 다른 곳에 적용하면 여러 가지 총량의 법칙이 나온다. ‘효도 총량의 법칙’도 그 중 하나다. 효심에는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법칙이다. 100세 시대에는 이미 늙어가는 자식들의 효도 총량이 소진되어 더 이상의 희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녀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식들 효심이 고갈돼서 힘들지 않게 해주는 것이 100세 부모들의 할 일이다. 고광애가 지은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 총량의 법칙’이다. ‘불행 총량의 법칙’과는 쌍둥이다. 새옹지마는 행복과 불행의 상관 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도 불운할 때가 있었고, 한평생 불운했던 사람도 행복한 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운명론적인 사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구적인 행복과 불행은 없으니 ‘행복 총량의 법칙’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초년 성공을 인생 3대 불행 중의 하나로 꼽아 왔는데 이 또한 행복 총량의 법칙으로 풀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계속 승승장구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사’다. 더구나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얻기 힘들고 자만과 교만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초년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가 농담 삼아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더 잘했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반문하자 하는 말이 걸작이다. “성적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분명 S대 공대에 갔을 것이다. 당시에 S대 공대에 간 친구들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승승장구했지만 50대 중반에 이르자 대부분 은퇴하고 지금은 놀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직도 현역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당시엔 공대가 최고 인기 대학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지만 웃어넘기기엔 걸리는 것이 많다.

생각해보면 당시에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흔히 고난을 ‘감춰진 축복’이라고 부른다. 숨겨진 축복은 고난을 극복해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닥은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있다고 한다. 세상이 온통 웃을 일이 없고 희망이 없게 보일지라도, 행복이나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보면 이 또한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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