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행순 카트만두대 객원교수·전남대 명예교수]ABC 산행에서 인생의 ABC를 배운다
네팔 한인 사회의 몇몇 칠순들이 의기투합하여 7박 8일 일정으로 ABC(Annapurna Base Camp)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최고 연장자가 76세, 평균 연령이 72세였다. 시간을 아끼고 힘을 비축하기 위하여 포카라까지 비행기로 가려고 새벽에 카투만두 공항에 나갔으나 날씨가 나쁘다며 계속 지연되는 항공편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밤중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30분 걸리는 비행기 대신 7시간 공항에서 기다리고 7시간 버스를 탔으니 꼬빡 하루를 허비한 셈이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아름다운 포카라 1박을 즐거워하며 폐와호수 곁에 위치한 한국식당에서 삼겹살을 넉넉히 먹어두었다.
산행 첫날, 고도 1300m의 시와이까지 짚차를 타고 왔다. 여기서부터 포터들에게 짐을 맡기고 스틱에 의지하여 산길을 걷는데 좀 오르다가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하니 4130m의 ABC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첫날 오후에 티벳인이 운영하는 롯지에 들었는데 상술 좋은 청년이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우리를 반겼다. 처음 네팔에 올 때 어떤 이들이 “네팔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일 것이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카트만두는 대기오염도가 세계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것 같고 히말라야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석회수여서 필터로 거르고 끓여먹어야 하니 산에서 마시는 물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만 했다. 저녁시간에 가이드가 찾아와서 짐이 너무 많다고 일부는 롯지에 맡기자고 했고 우리는 한사람을 추가하여 짐을 덜어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아랫마을에서 짐꾼이라고 불려온 17세 소년은 맨발에 조리를 신고 있었다. 겁먹은 듯한 얼굴에서 웃음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꽤 큰 우박을 동반한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일찍 롯지에 들었는데 양철 지붕에 세차게 떨어지는 우박소리, 천둥소리를 들으며 전기 나간 헛간 같은 샤워실에 반시간 쯤 갇혀 있을 때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셋째 날 신기하게도 이 산속에 운동화를 파는 상점이 있어서 소년은 조리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짐꾼의 삶을 시작할 것 같은 소년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졌다.
상쾌한 공기, 우거진 숲, 지저귀는 새소리,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야생화, 깎아지른 듯 거대한 설산들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 산길을 뛰어다니는 염소떼, 방울을 딸랑거리며 짐을 나르는 당나귀들, 세계 각국에서 온 남녀노소, 그리고 ‘도꼬’라는 대바구니에 띠를 둘러 등에 지고 이마로 지탱하며 걷는 배달꾼들의 짐 속에 보이는 신라면은 산행에 즐거움을 더했다. 이 도꼬는 때로 기진맥진한 등산객을 실어 나르는 ‘히말라야 택시’라고 했다.
MBC(Machapuchare Base Camp·3700m)에서 ABC 가는 길에 아이젠을 신고 눈 위를 걷는데 굉음과 함께 눈보라를 흩날리며 흘러내리는 눈사태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이 높은 곳에 핀 작은 보라색 꽃들은 낮은 곳의 꽃보다 더 소중해 보였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인데 언젠가는 바다 밑이었을 히말라야 산맥의 길이가 2500㎞에 달하고, 안나푸르나 제1봉은 높이가 8091m라고 한다.
ABC는 제1봉의 약 절반 지점에, 설산들 중앙에 위치한다. 카트만두 대학 숙소에서 멀리 보이던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ABC에서 정면으로 보는 마차푸차레는 삼각의 등받이에 팔걸이 두개가 대칭을 이룬 왕좌처럼 위용을 자랑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 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양사언의 시조는 바로 세계의 지붕, 네팔의 히말라야 설산을 두고 읊은 것 같다. 네팔에 살면 이런저런 재미가 있는데 이 산행이 단연 최고였고 가장 교훈적인 경험이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의 연속이었고 이는 삶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부침(浮沈)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기진맥진하여 롯지에 들지만 자고 나면 알 수 없는 새 힘으로 날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한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갔다. 나는 이번 산행을 통하여 ‘날마다’와 ‘한 걸음’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온 몸으로 깨달았다. 인생의 ABC를 새롭게 배웠다.
셋째 날 신기하게도 이 산속에 운동화를 파는 상점이 있어서 소년은 조리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짐꾼의 삶을 시작할 것 같은 소년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졌다.
상쾌한 공기, 우거진 숲, 지저귀는 새소리,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야생화, 깎아지른 듯 거대한 설산들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 산길을 뛰어다니는 염소떼, 방울을 딸랑거리며 짐을 나르는 당나귀들, 세계 각국에서 온 남녀노소, 그리고 ‘도꼬’라는 대바구니에 띠를 둘러 등에 지고 이마로 지탱하며 걷는 배달꾼들의 짐 속에 보이는 신라면은 산행에 즐거움을 더했다. 이 도꼬는 때로 기진맥진한 등산객을 실어 나르는 ‘히말라야 택시’라고 했다.
MBC(Machapuchare Base Camp·3700m)에서 ABC 가는 길에 아이젠을 신고 눈 위를 걷는데 굉음과 함께 눈보라를 흩날리며 흘러내리는 눈사태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이 높은 곳에 핀 작은 보라색 꽃들은 낮은 곳의 꽃보다 더 소중해 보였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인데 언젠가는 바다 밑이었을 히말라야 산맥의 길이가 2500㎞에 달하고, 안나푸르나 제1봉은 높이가 8091m라고 한다.
ABC는 제1봉의 약 절반 지점에, 설산들 중앙에 위치한다. 카트만두 대학 숙소에서 멀리 보이던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ABC에서 정면으로 보는 마차푸차레는 삼각의 등받이에 팔걸이 두개가 대칭을 이룬 왕좌처럼 위용을 자랑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 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양사언의 시조는 바로 세계의 지붕, 네팔의 히말라야 설산을 두고 읊은 것 같다. 네팔에 살면 이런저런 재미가 있는데 이 산행이 단연 최고였고 가장 교훈적인 경험이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의 연속이었고 이는 삶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부침(浮沈)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기진맥진하여 롯지에 들지만 자고 나면 알 수 없는 새 힘으로 날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한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갔다. 나는 이번 산행을 통하여 ‘날마다’와 ‘한 걸음’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온 몸으로 깨달았다. 인생의 ABC를 새롭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