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대구산(産) ‘투란도트’가 부러운 이유
2016년 01월 20일(수) 00:00
“메이드 인 대구 뮤지컬 ‘투란도트’, 내달 서울서 개막.” 며칠 전 신문을 넘기다 눈에 들어온 기사의 제목이다. 수많은 뉴스 중에서 이 기사에 시선이 간 이유는 3년 전 대구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당시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이하 DIMF)의 초청작 ‘투란도트’를 관람하고 느낀 생각은 “와, 물건인데!”였다.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서울의 블록버스터 뮤지컬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새롭게 해석한 ‘투란도트’의 극중 배경은 중국이 아닌 가상의 물속나라 ‘오카케오 마레’. ‘메이드 인 대구’의 창작뮤지컬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차별화된 장치다. 줄거리는 오페라 ‘투란도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잔인한 죽음으로 차가운 심장을 가지게 된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험에 나선 왕자 ‘칼라프’, 그리고 왕자를 사랑하는 시녀 ‘류’가 펼치는 희생과 사랑의 대서사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객석을 가득 메운 중국관객들이었다. 대구시와 DIMF 사무국이 중국시장을 겨냥해 차이나풍의 음악을 가미한 전략이 통한 것이다. 이처럼 지난 2011년 ‘한국의 브로드웨이’를 목표로 3년 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투란도트’는 대구의 브랜드로 떠올랐다. 이후 지역 예술인들과 미흡한 부분들을 꾸준히 보완한 결과, ‘투란도트’는 중국 상하이 등에서 러브콜을 받는 귀하신 몸이 됐다. 그러고 보면 이번 ‘서울 입성’도 명성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

기사를 읽은 후 문득 광주를 상징하는 공연작품이 어떤게 있나, 생각해 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다. 두달 전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를 내걸고 공식개관한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예술극장의 수많은 레퍼토리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드물었다.

물론 개관 초기라 성급한 판단일 수 있지만 예술극장의 콘텐츠는 아쉬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 실험적인 내용이야 그렇다 해도 대부분 유럽이나 서구권의 콘텐츠들이다 보니 지역은커녕 아시아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16시즌 프로그램(아워 마스터)으로 무대에 올린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방향성 잃은 예술극장의 민낯을 드러낸 경우다.

1976년 초연 당시에는 스토리라인이 없는 파격적인 무대로 화제를 뿌렸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일부 공연전문가 이외에는 다가가기 힘든 전위 오페라다. 게다가 예술극장은 광주공연을 끝으로 영구 폐기되는 이 작품의 유치를 위해 3년 예산(80억 원)의 4분의 1인 20억 원을 들였다.

최근 문화전당의 콘텐츠 제작을 맡은 아시아 문화원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5개원의 예술감독 체제에서 전시사업실, 공연사업실, 교육사업실 등 실장 중심제로 운영체계를 변경해 콘텐츠의 질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모쪼록 이번 체질개선이 문화전당과 예술극장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회심의 카드가 되길 바란다. 광주는 ‘메이드 인 문화전당’의 명작을 보고 싶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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