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살 광주극장의 불안한 미래?
2015년 11월 04일(수) 00:00
2년 전 취재차 상하이를 방문한 기자는 ‘캐타이 극장’이란 오래된 영화관을 발견했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런 외벽과 금박으로 마감된 건물 정면의 ‘CATHAY’ 로고는 주변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영화관이라기 보다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1932년 영·미 영화관으로 세워진 극장은 몇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1990년대 초 근대유적지로 지정된 후 다양성(예술)영화관으로 변신했다. 8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말해주듯 지금도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부러운 마음으로 ‘캐타이 극장’ 주변을 둘러 보는 동안 광주 충장로 5가에 자리하고 있는 광주극장이 오버랩됐다.

그러고 보니 ‘캐타이 극장’과 광주극장은 80년이라는 세월과 예술영화관이라는 컨셉 등 비슷한 점이 많다. 광주읍이 광주부(府)로 승격하던 1935년 10월1일 문을 연 광주극장은 올해로 80주년을 맞은 광주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

그도 그럴 것이 추억과 기억의 박제된 공간으로 한 때 문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지난 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지정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주는 ‘시네마테크’로 새롭게 태어났다. 상업성 짙은 영화에서 느끼기 힘든 잔잔한 감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홍수 속에서도 예술영화관의 ‘존재감’을 지켜주는 원동력이다. 올해 멀티플렉스에서 외면받은 ‘셜리의 모든 것’, ‘베스트 오퍼’, ‘도희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위로공단’ 등 색깔있는 다양성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준 곳도 광주극장이었다.

최근 전국 20여 곳의 예술영화관에 비보가 전해졌다. 국내 최초의 단관예술영화 전용극장인 ‘씨네 코드 선재’가 오는 30일을 끝으로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최근 1년 사이에 거제 아트시네마를 시작으로 대구 동성 아트홀 등 지역명소로 여겨지던 전용관이 잇따라 운영난 때문에 폐관했다. (지난 2월 문을 닫은 동성아트홀은 시민들과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지난 9월 다시 문을 열었다).

이처럼 예술영화관이 우리 곁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관객감소가 주된 원인이지만 최근 영진위의 달라진 지원방식도 한몫한다. 기존 예술영화전용관에 운용 보조금을 지급해오던 극장 중심의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영화 유통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연간 48편의 예술영화를 선정해 이들 영화에 마케팅 비용과 상영관 확보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48편의 예술영화에 포함되지 못하면 ‘영화’도 아닐 뿐 더러 이를 상영하는 영화관에도 지원금을 끊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영진위의 지원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광주극장으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80주년 맞은 광주극장의 앞날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멀티플렉스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전용관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한다. 이제 예술영화관을 공공재로 인식해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할 때도 된 것 같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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