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플라네이드의 추억
2014년 10월 22일(수) 00:00
3년 전 이맘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7시30분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들른 싱가포르의 복합문화시설 에스플라네이드 1층 광장에는 수백 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려면 30분이나 남았는데 객석의 분위기는 이미 들떠 있었다. 이윽고 싱가포르에서는 꽤 유명한 가수 힐러리 프란시스가 등장해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클리프 리차드의 ‘The Young Ones’, 맨프레드 만의 ‘Do Wah Diddy Diddy’ 등 흘러간 팝송을 부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차도르를 덮어쓴 여성,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성 등 외모는 다양했지만 음악을 즐기는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다.

이날 공연은 에스플라네이드가 기획한 ‘오늘의 음악회’. ‘지난 60년대를 되돌아보며’라는 테마로 진행된 무대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2002년 개관과 동시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는 음악회는 ‘타이밍’ 만 잘 맞으면 기자처럼 이방인들도 객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비록 1시간 남짓의 음악회였지만 에스플라네이드의 킬러콘테츠라고 하는 말이 실감났다.

지난 주말 ‘2014 문화의 달’ 기념행사가 열린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문화전당) 내 아시아 문화광장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에스플라네이드의 추억’이 되살아 났다. 아시아 문화광장은 이달 말 준공되는 문화전당의 야외광장으로, 지난 10년 동안 꼭꼭 감춰왔던 모습이 이날 최초로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한국의 에스플라네이드’를 내걸고 2003년 첫삽을 뜬 문화전당은 ‘빛의 숲’(우규승 설계)을 주제로 총 3조5000억 원이 투입된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처럼 광주의 미래를 바꿀 빅 프로젝트이지만 시민들은 지상건물이 아닌 지하에 들어 앉은 문화전당의 컨셉 때문에 제대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날 시민들의 표정에선 베일에 가려졌던 문화전당의 ‘생얼’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미디어 퍼포먼스였다. 빛고을의 성장동력인 미디어 아트를 ‘빛의 숲’에서 쏘아올린, 말 그대로 ‘빛의 향연’이었다. 문화전당 외벽을 캔버스 삼아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씨와 지역 예술인들이 어우러져 심장을 두드리는 강한 비트의 음악과 무용, 명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광주의 꿈’은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문화전당에 대한 기대와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내년 9월이면 문화전당이 역사적인 개관을 맞는다. 아직도 일각에선 ‘잡히지 않는’ 콘텐츠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광주의 꿈’처럼 야외광장에서 즐길 수 있는 ‘필살기 콘텐츠’로도 얼마든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광주를 찾은 외지 관광객들도 ‘문화전당에서의 멋진 추억’을 하나씩 안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3년 전 에스플라네이드에서의 기자처럼.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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