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감자칩
박 행 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2014년 07월 23일(수) 00:00
‘뜨거운 감자(hot potato)’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태를 비유하는 영어권 관용구로, 우리도 흔히 사용하는 익숙한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엔 바삭바삭한 감자칩, 노릇노릇한 프렌치프라이가 이 시대 유럽의 대표적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의 과학자들과 식품안전국 관계자들은 누구나 즐겨먹는 이런 감자 요리들을 먹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고, 마냥 두고 볼 수도 없어 고민이다.

7월 초, 유럽식품안전국(EFSA)이 크래커, 감자칩, 커피 등 고온에서 굽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음식에서 발견되는 ‘아크릴아미드’라는 화학물질이 동물실험에서 발암물질로 확인됨에 따라 인체에도 위험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는 지난 수년간 음식에 들어있는 아크릴아미드에 대한 연구와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으며 식품업체들에게 그 함량을 가급적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크릴아미드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2002년이다. 스웨덴 과학자들이 감자칩과 프렌치프라이 등 굽거나 기름에 튀긴 음식물에서 아크릴아미드가 검출된다고 발표하자 학계와 사회일반이 모두 경악했다. 그 함량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음용수에 허용한 한도보다 수 백 배 웃도는 양이었다. 조리온도가 높을수록, 조리시간이 길수록, 아크릴아미드 생성량도 증가했다. 아크릴아미드는 플라스틱, 접착제 등의 원료로 쓰이며 신경독성이 있고 발암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취급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물질이다.

식재료 자체나 삶은 요리에는 없는 아크릴아미드가 어떻게 고온에서 조리한 음식물에서 검출되는가를 놓고 한동안 ‘아크릴아미드 미스터리’라고 불렀다. 얼마 후에 영국, 스위스, 미국, 캐나다 과학자들이 개별 연구를 통하여 ‘아스파라긴’이 120℃ 이상에서 포도당과 만나면 ‘Maillard’라는 화학반응으로 아크릴아미드를 생성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스파라긴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하나로서 아스파라가스에서 처음 분리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아스파라긴은 감자와 콩류에 많고 숙취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술꾼들의 단골 메뉴로 콩나물 해장국이 애용되어 온 것은 경험을 통한 부엌과학의 산물인 셈이다.

식재료들이 조리과정에서 열을 받으면 화학반응을 통하여 다양한 맛과 냄새, 색깔과 질감을 낸다. 구수한 맛과 고소한 맛, 군침 도는 음식 냄새, 노릇노릇하다가 점차 갈색으로 변하면서 생겨나는 아삭 바삭한 질감 등, 부엌은 실용을 위한 응용과학 공간이고 조리는 과학이다.

포도당과 아스파라긴은 감자, 콩 뿐만 아니라 여러 곡류와 채소들에도 포함되어있다.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낸 비스킷, 구수한 식빵, 입맛 돋우는 닭튀김, 채소 볶음, 향긋한 커피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런 음식물 속에는 함량은 다를지라도 모두 아크릴아미드라는 독이 들어 있다.

미국 식약청(FDA)에서 아크릴아미드 관련하여 추진하는 세 가지 목표는 인체 섭취량 측정, 독성 연구, 그리고 아크릴아미드 생성을 최소화하는 요리법 개발이다. 일반적으로 물을 사용하면 기름보다 낮은 온도에서 조리가 가능하므로 아크릴아미드 위험성이 줄어든다.

우리 부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조리방법은 끓이고, 졸이고, 삶고, 데치고, 찌고, 달이고, 고아먹는 수준이어서 조리의 전 과정이 아크릴아미드 생성 온도 이하에서 이뤄진다. 더구나 우리가 끼니마다 먹는 김치는 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크릴아미드 걱정이 전혀 없는 식품이다.

전세계적으로 ‘웰빙’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아크릴아미드 걱정 없는 한국식 조리법(Acrylamide-free Korean-style Cooking)’이라는 제목의 영문 요리책을 발간, 한식 요리들을 널리 소개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 음식문화가 한류 물결을 탄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인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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