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푸른길을 생각하다
이 경 희
푸른길 사무국장 이경희
2014년 05월 20일(화) 00:00
지난 연휴 가족들과 함께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찾았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명성처럼 많은 이들이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은 아름드리 거목이 된 메타세쿼이아는 불과 40여년 전인 지난 1970년에 2∼3년생의 작은 묘목을 식재한 것이라는데, 역시 시간은 우리에게 좋은 장소들을 만들어주는 힘이 있나보다. 그 명성만큼이나 이 길의 가치는 문화재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지정’을 제안하였는데, 그 근거로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이 갖고 있는 경관의 가치와 의미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처럼 광주를 대표하는 길이 있다. 광주역에서 옛 남광주역, 광주대학교까지 8km에 이르는 길다란 숲길, 푸른길 공원이다. 광주 동구와 남구, 그리고 10여개 동네를 잇는 이 길은 광주와 여수를 잇는 옛 기찻길의 역할이 끝난 후 만들어졌다. 기찻길의 폐선이 결정된 이후 광주를 대표하는 숲길을 만들자는 지역주민, 시민들의 열망에 따라 광주시는 폐선부지 위에 푸른길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들은 이 길을 만드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헌수기금을 모았고 매년 봄, 가을철이면 시민들이 ‘내 나무’ 한 그루씩을 푸른길에 정성껏 심어 숲을 만들어왔다.

시민이 결정하고 조성한 도시숲길, 시민과 행정이 협치를 통해 완성한 푸른길 공원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폐선부지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광주 푸른길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광주를 찾아오고, 그 결과 전국 각지의 폐선부지는 광주 푸른길을 따라 공원 혹은 자전거 길로 결정되고 조성되고 있다. 그런데 푸른길 공원이 다시 철길이 될 위기에 놓였다.

지난 4월, 광주시는 도시철도 2호선의 건설을 위해 백운광장과 조대치대병원 앞까지의 푸른길을 이용할 것이라 했다. 다른 구간은 대부분 도로 중앙선을 따라 도시철도 2호선이 건설되는데 반해 이 구간에서는 푸른길 공원을 파헤치고 2호선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운행되는 도시철도 1호선은 지하 3층 이상의 깊이에 건설되었는데 이와 다르게 도시철도 2호선은 저심도 방식으로 건설된다. 이 저심도 방식은 지하1층 깊이로 땅을 파내고 이곳에 선로를 설치하는데 그러다보니 지상에 있는 푸른길의 나무들은 모두 베어지거나 옮겨지고, 공사가 끝난 후에도 콘크리트 터널위에 얇게 쌓인 흙바닥은 나무가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변질된다.

더불어 도시철도 2호선의 푸른길의 훼손은 일부구간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백운광장과 조대치대까지의 푸른길 공원은 전체 푸른길 중 유일하게 큰 도로와 접하는 구간이며, 전체 푸른길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위치이다. 특히 이 구간에는 푸른길의 역사, 문화, 생태적 거점공간인 남광주 구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구간의 훼손은 푸른길 전체의 가치와 의미,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구간은 푸른길공원 조성 초기인 2003년∼2005년 조성된 길로, 푸른길이 자칫 열악한 지방재정으로 인해 방치되는 것을 우려한 지역기업, 시민들의 헌수기금과 기탁으로 만들어졌기에 시민참여, 민관 거버넌스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철거되어버린 남광주역의 흔적인 남광주철교의 교각과 철로가 남겨진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숲길 푸른길의 역사와 가치는 광주시민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이며, 길다란 도시숲길 푸른길의 이야기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과거처럼 도시의 숲을 비어있는 공간으로, 공사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야만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도시의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는 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10여년 전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많은 이들이 국도의 선형 변경을 요구했고 그 뜻이 받아들여진 결과 지금의 담양가로수길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때 도로공사의 편리를 위해 나무를 베어버리는 야만의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가로수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년 훨씬 지난 지금, 광주의 푸른길은 아직도 야만적 행정과 야만적 토목공사에 맞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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