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근로정신대 재판이 주목되는 이유
이 국 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국장
2013년 10월 29일(화) 00:00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아픈 사연을 들으면서 유난히 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일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돼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고, ‘아버지’라는 이름 한번 평생 불러보지 못한 어느 한 유족의 얘기다.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 후 징용에 끌려간 사람들도 하나 둘 부모와 가족을 찾아 고향에 돌아왔지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코흘리개 어린 마음에도 왠지 어머니한테서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느 날부터 그는 밤에 어머니 곁에 잠 들면서도 한 손으로는 꼭 어머니 치마 저고리 한 쪽 끈을 손에 쥐고 잠에 들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곁에는 어머니가 어제 저녁 입었던 치마저고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아들이 잠에서 깰까봐 조용히 그 자리에 치마저고리만 벗어놓은 것이다. 결국 그것이 어머니와 생애 마지막 작별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몇 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그리고 고이 잠자는 어린 아들을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던 그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야 어머니의 빈 치마 저고리만 부여잡고 있었던 그는 또 얼마나 허망했을까. 일제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이렇게 깊게 패여 있다. 올해는 해방 68년이다.

지난해 5월24일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배상’ 취지로 사건을 항소심 재판부로 돌려보낸바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대법원 파기 환송 사건에서 ‘신일본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소송 원고들에게 각각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로써 그동안 일본에서의 소송에 연거푸 좌절해 왔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는 해방 68년 만에 새로운 명예회복의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이 배상판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려야 했다. 신일본주금은 일본에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16년, 미쓰비시중공업은 무려 18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처지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애초 원고 5명의 생존자가 있었지만 오랜 소송을 견디지 못하고 그 사이 5명의 모든 원고가 사망하고 말다. 결국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승소 판결은 피해 당사자가 아닌 남은 유족이 대신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모두 끝난 것도 아니다. 판결이 부당하다며 곧바로 이들 기업이 대법원에 재 상고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에서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제기된 4건의 소송 사건을 포함해 국내에서 제기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 사건의 당사자를 모두 합해면 고작 5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로 동원된 인원만 자그마치 10만 명이다.

이런 가운데, 여자근로정신대 사건의 우리 사법부 최초 판결이 오는 11월1일 오후 2시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정돼 있다. 피해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85세. 일본 소송으로 시작해 장장 14년째에 이른 이 재판 역시, 세월의 벽을 이기지 못하고 그 사이 원고 2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68년이라는 세월도 부족해, 미쓰비시는 또다시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내밀 것인가.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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