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상하이, 그리고 광주
2013년 07월 03일(수) 00:00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릴(Lille) 시는 인구 24만 명의 작은 도시다. 산업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릴의 석탄공장 굴뚝에선 연기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릴의 ‘봄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많은 공장이 동유럽 등으로 옮겨가면서 ‘잘 나가던’ 공업도시는 급속히 쇠락해 갔다. 1990년대에는 인구 17만 명 중 3만 여 명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떠났다. 어찌나 썰렁한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비결은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덕분이다. 지난 1985년 그리스의 멜리나 메르쿠리 문화부 장관의 제안으로 세상에 나온 유럽문화수도는 EU가 매년 1∼2개 도시를 순번제로 지정해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키우는 프로젝트. 리버풀, 파리, 베를린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문화도시가 이 사업의 수혜자들이다.

지난 2004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릴은 ‘릴 2004’프로젝트를 펼쳐 회색도시를 되살려 냈다. ‘릴 2004’의 조직위원회는 낡은 설치물들을 예술작품으로 리모델링해 도시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바꾸고 빈 공장이나 상가는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로 재활용했다.

무엇보다 ‘릴 2004’의 성공 주역은 화려한 볼거리였다. ‘릴 2004’ 조직위원회는 비슷한 레퍼토리를 시기별로 ‘우려먹는’ 대신 1년 동안 새로운 이벤트가 끊이지 않도록 공을 들였다. 그 결과 1년 간 수십 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대도시로 떠났던 1만3000여 명이 되돌아왔다.

최근 한·중·일 3개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바로 ‘아시아판 유럽문화수도’다. 오는 2014년 1월부터 시행하는 이 사업은 1년 동안 해당도시에서 한·중·일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예산(100억 원) 등을 지원한다. 이에 따르면 2014년에는 한·중·일에서 각 1개도시, 2015년엔 중국 1개 도시, 2016년에는 한국 1개 도시, 2017년에는 일본 1개도시에서 3국간의 문화가 교류될 예정이다.

지난달 한국개최도시로는 부산 등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광주가, 일본과 중국에선 요코하마와 상하이가 각각 선정됐다. 특히 광주로서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사업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라 할 수 있다. 요코하마, 상하이 등 세계적인 도시들과의 교류를 통해 광주의 역량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일 공식출범한 (재)동아시아문화도시의 역할은 자못 막중하다. 재단의 기획과 운영에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려 있는 만큼 치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프랑스 변방에서 유럽의 허브로 변신한 ‘릴의 기적’을 광주에서 재현해보자.

<편집부국장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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