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라이젠이 광주를 떠난 까닭은?
2013년 05월 01일(수) 00:00
지난 2011년 1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광주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유사한 홍콩서구룡 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WKCD)를 주요뉴스로 다뤘다. 이들은 세계적인 큐레이터 라스 니티브(59·영국 테이트모던 초대관장)가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M+현대미술관 디렉터로 임명됐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WKCD를 집중보도했다. 국제 미술계의 거물인 니티브가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홍콩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빅뉴스였기 때문이다.

특히 WKCD의 콘텐츠와 인적 구성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클 린치(전 시드니오페라 하우스 대표)와 루이스 유(프로듀서), 니티브 등 ‘한자리에 모시기 힘든’ 월드스타들을 대거 영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콩정부는 ‘도심 속의 문화공원’이라는 컨셉아래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개관하는 M+미술관, 중국오페라 극장 등 WKCD 주요시설들의 콘텐츠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일찌감치 니티브를 전시감독으로 선임한 것도 바로 ‘아시아의 현대미술관‘을 내건 M+미술관의 컬렉션과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개관을 불과 2년여 앞둔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하 전당)콘텐츠에 비상이 걸렸다. ‘뜬구름’ 같은 전당의 난해한 컨셉도 그렇거니와 콘텐츠를 기획하는 예술감독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에도 벨기에 출신의 프리 라이젠(62)이라는 걸출한 공연예술감독이 있었다. 지난해 3월 문화관광부는 국제공모를 거쳐 전당의 아시아예술극장 감독으로 라이젠을 임명했다. 당시 그녀는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적 성취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게 돼 영광이다. 아시아의 역사, 정치적 상황 등을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6개월 만에 중도하차해 아쉬움을 주었다. 문광부가 밝힌 사퇴이유는 ‘건강’이었지만 그녀는 얼마 후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녀가 최근 6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10여 편의 공연을 관람했다. 한 중앙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라이젠은 아시아 예술극장의 중도하차를 묻는 질문에 “개관작품을 위해 국내외 전문가를 초빙해 마스터 플랜을 세워놓고 보니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다던 ‘그녀는 약 1시간 반의 인터뷰 내내 에스프레소 더블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고 담배를 입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젠이 광주를 떠난 진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라이젠이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마스터플랜’에 대한 자신이 없어 그만뒀다고 하니 왠지 씁쓸하다. 전당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컨셉이 그녀의 의욕을 꺾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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