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미스터 김 !
2013년 04월 24일(수) 00:00
2년 전 여든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씨는 늦깎이 문인들의 우상이었다. 지난 1970년 마흔 살의 나이에 ‘나목’(裸木)으로 등단했지만 타계할 때까지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을 화려하게 보냈다.

사실 박씨가 등단할 때만 해도 문학계에서는 기대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제대로 된’ 작가로 성장하려면 수년이 걸리는 데 과연 후속작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자칫 데뷔작이 유일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박씨는 스무 살 때 겪은 분단의 비극을 기회가 되면 글로 ‘증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꿈은 ‘나목’을 통해 열매를 맺었다.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라는 문단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박씨는 근 40여 년 동안 수십여 편의 베스트셀러를 쏟아냈다.

최근 김동호(77)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도 박씨처럼 ‘늦깎이 예술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996년∼2010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었던 그는 지난 3월 영화제 심사의 뒷이야기를 담은 24분짜리 단편영화 ’주리’를 제작해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77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직접 메가폰을 잡고 주연을 맡은 안성기, 강수연과 함께 현장을 누볐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광주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 강연자로 참석한 김 위원장은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꾸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올해 단편영화를 하나 더 만들고 1∼2년내에 장편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70대 중반이란 나이가 ‘걸리긴’ 하지만 ‘미스터 김’(외국 영화계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으로 ‘되돌아가’ 화이팅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그의 ‘계획’이 성공할 지 알 수 없지만 ‘칠순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뭔가 시작하기엔 ‘오후 3시’ 같은 어중간한 나이에도 꿈을 꾼다는 건 제2, 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요즘의 40∼50대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여 나이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미스터 김’들이 있다면 시인 정희성의 ‘태백산행’를 새겨 둘 일이다.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쉰일곱이라고/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좋을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태백산 주목(朱木)이(…)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이하 생략)”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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