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광주천 경관
2010년 03월 08일(월) 00:00
인구 40여 만명의 경남 김해시는 요즘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지난 2000년 전국 최초로 신설한 도시디자인과를 벤치마킹하려는 지자체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인구 360만 명의 부산시도 포함됐다. 영남권의 제1도시가 중소도시에 한 수 배우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시가 ‘자존심을 죽이면서까지’ 김해를 방문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근래 김해시는 공공디자인 분야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국내외 각종 공공디자인 공모전에서 김해시의 공공조형물이 줄줄이 입상하는 쾌거를 얻고 있다. 특히 도시경관과 옥외광고물 분야는 전국 지자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성공사례다.

김해시는 10년 전 전국에서 최초로 도시디자인과를 신설하고 관련분야 박사급 2명을 채용해 본격적인 도시경관 디자인에 나섰다. 공공디자인에 눈 돌린 지 5년 만에 김해시는 한 차원 높은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서부산에서 동김해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김해교를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살았던 금관가야의 역사를 상징하는 왕관모양의 조형물로 형상화해 도시의 품격을 높였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해반천의 교량 3개(연지교, 경원교, 봉황교)를 LED조명으로 채색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김해 도심을 가로지르는 해반천은 가족들의 산책코스로, 연지교·봉황교·경원교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이들 공간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예술과 커뮤니티의 조화 때문이다. 도시의 공공시설물을 가야문화의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으로 접목시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삭막한 김해교와 해반천을 도시의 아이콘으로 가꾼 공로로 김해시는 지난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공공디자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자신감을 얻은 김해시는 오는 5월까지 디자인 창조도시를 위한 콘텐츠를 확정하고 연내에 유네스코 디자인 분야 창조도시에 등록할 예정이다.

김해시의 성과를 접하니 문득 광주에서 걷고 싶은 거리는 어딜까 궁금해진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시민들은 선뜻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비엔날레와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가 열리는 문화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거리는 몰개성적이다. 특히 공공디자인의 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07년부터 광주시가 추진중인 광주천 교량 경관개선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려 195억 원의 예산을 들여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디자인 개념이 단계별로 상이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교량의 경우 지나치게 큰 조형물이 설치돼 주변경관을 깨트리고 있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원지교 인근의 20여 m 철골구조물은 공공디자인 실종의 결정판이다. 3억원이 투입됐으나 심미성은커녕 상징성과 기능성 어느 것 하나 찾을 수 없다. 공공조형물은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도시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광주에는 예술의 거리 루미나리에 등 시민들과 소통하지 못해 흉물로 전락한 조형물이 더러 있다. 원지교 철 조형물이 ‘제2의 루미나리에’ 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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