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칼럼] 정치 앞에 약해지는 시민운동
2008년 03월 10일(월) 20:57
다가오는 제18대 총선에 관한 뉴스를 듣다가 문득 TV채널을 돌리니 야생동물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동물들의 삶의 모습을 보니 그들도 민초들처럼 살아보겠다고 떼를 지어 서로 돕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모습이 비쳐진다. 가장 작은 개미떼들의 공동생활은 참으로 질서정연하고 빈틈이 없는 조직의 모습이다.
저렇게 부지런히 일하며 사는 모습을 의롭게 보아 옛사람들은 개미를 ‘의충’(蟻蟲)이라고 불렀던가 보다. 꿀벌들도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부지런히 꿀을 모으고 일을 낳고 키우는 데 쉴 틈이 없다. 벌보다 고등한 인간들은 그 벌들에게 그럴 듯한 거짓 음식으로 속이고 대부분의 꿀을 빼앗아 간다.
꿀벌들은 꿀을 빼앗기면서도 그들의 삶을 지키려고 협력하며 일하고 살아간다. 사람이 기르는 가축도 사람에게 잡아먹히면서도 가축 떼의 공동생활을 지속한다. 짐승들의 공동생활도 사회생활인가? 그들이 싸우고 함께 도망하는 것을 보면 공동체의식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호주의 한 목장에서 본 바로는 주인은 개와는 친하여 개로 하여금 양떼를 몰게 하지만 양떼와 주인 간에는 친화관계가 지극히 엷다. 이러한 동물의 사회와 사람의 사회 사이에는 어떠한 동질성이 있을까? 모든 기운을 가진 무리들은 모두가 다 그 뜻 맞는 이를 만나기를 바란다. 다만 사람과 짐승 사이에는 그 근기(根基·뿌리를 내린 터전)의 차이가 있을 뿐이리라.
최근 선거철이 닥치니 뜻 맞는 이들이 같은 뜻을 따라서 겹겹이 모인다. 혈연·지연·학연과 다양한 문화적 취향에 따라서 선거를 통한 끈끈한 결속을 만든다. 이를 보면서 식자우환(識字憂患) 같은 유식한(?) 생각을 해본다. 선거운동조직도 ‘NGO’냐고. 유권자를 조직하고 돈 받고 뛰는 것도 ‘NGO’인가?
사람들이 모이면 다 ‘NGO‘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면 일단은 ‘NGO’이지 않을까. 목적의 순수성과 정의부합성으로 모여야 예컨대 사회봉사회, 스포츠동호회, 동창회 등을 ‘NG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NGO’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우리는 우리의 국제투명성기구한국본부(한국투명성기구)와 같은 단체를 ‘NGO’라고 생각하여 왔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은 매우 번거롭고 여러 가지 강한 저항에 부딪혀 참여도가 낮아지고 지원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령 행정기관이나 고도의 권력적, 정치적 기구에 대한 반부패운동, 투명성운동은 고도의 집중적·전문적 인력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 경우에 사적인 자원봉사자들인 시민·사회단체 운동가들은 힘이 빠지고 대항력을 잃게 된다. 공공기관의 재정적 도움을 조금만 받아도 시민·사회단체는 약화되고 만다. 대선이나 총선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에는 어딘지 힘 있고 신나는 운동으로 보인다.
반면에 정도만을 주장하는 건전한 시민운동의 실효성은 어려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오늘날 고도의 부패 은폐적인 정치집단 앞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시들어 가거나 변질하고 있음을 비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환담 한국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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