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과 유인촌
2008년 02월 24일(일) 19:33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夏至·6월21일)가 되면 프랑스 전역은 거대한 공연장으로 변한다. 바로 ‘페트 드 라 뮤지크(Fete de la Musique)’때문이다.
올해로 27회째를 맞는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카페, 공원, 거리, 광장 등 대중의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1만 8천여 회의 크고 작은 콘서트가 열려 1천500만 명이 문화의 향기에 흠뻑 빠졌다. 이 축제가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1985년 네덜란드, 덴마크 등 이웃 나라들이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뉴욕과 암스테르담 등 10개 도시가 페트 드 라 뮤지크를 모델로 한 음악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의 일등공신은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이다. 지난 1982년 미테랑 대통령은 당시 미국에 자리를 내준 문화강국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 연극배우 출신의 자크 랑을 문화정책의 수장으로 발탁했다. 오랫동안 문화현장을 누볐던 그는 10년간의 재직기간 동안 대중의 삶에 스며드는 정책들을 잇따라 입안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페트 드 라 뮤지크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축제의 성공으로 프랑스는 문화선진국의 명성을 되찾았다.
오늘날 프랑스가 세계의 문화중심도시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문화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195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화부를 신설한 프랑스는 앙드레 말로, 자크 랑 같은 걸출한 장관들을 통해 문화의 지형을 넓혔다. 초대장관을 지낸 말로는 문화정책에 복지개념을 도입, 전국에 문화의 집을 지어 예술활동을 지원했다. 자크 랑은 국가예산의 1%를 문화예산으로 확보, 대중과 예술의 접점을 늘렸다.
연극배우 겸 탤런트인 유인촌씨가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에 내정됐다. 유 내정자는 이 당선자의 몇 안 되는 문화예술계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문광부 장관 0순위로 뽑혔다. 배우로서 대중을 상대하며 터득한 설득력과 현장감각, 그리고 행정경험(서울문화재단 대표)을 두루 갖춘 ‘준비된 장관’이란 게 문화예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 온 유 내정자의 입각을 두고 ‘코드인사’라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문화예술계에 만연된 ‘편가르기식 인사’에 대한 악몽 때문이다. 특히 겉은 화려하지만 일은 서툰 일부 ‘화려한 아마추어’들에게 지친 일부 국민은 인기배우 출신의 유 내정자가 경제와 실용을 우선가치로 삼는 이명박 정부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21세기는 문화가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드는 문화향수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무대와 브라운관에서 수많은 대중들을 울고 웃긴 유 내정자는 이젠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문화정책으로 국민에게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어야 한다. 세트가 바뀐 무대 위에서 펼쳐보일 그의 2막 연기가 자못 궁금해진다.
<문화생활부장·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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