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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9 08:41
항일 역사 문화재 병천사 소음 분진 공해에 시달리고 훼손 우려 적법절차에 허가 받았나
 글쓴이 : 김조해 (124.♡.213.131)
   항일 역사 문화재 병천사 소음 분진 공해에 시달리고 훼손 우려 적법절차에 허가 받았나.hwp (16.0K) [0] DATE : 2020-07-19 08:41:04
항일 역사 문화재 병천사 소음 분진 공해에 시달리고 훼손 우려 적법절차에 허가 받았나

항일 역사 문화재인 병천사 바로 앞에 고층 아파트가 왠 말인가 문화재를 이렇게 관리해도 괜찮은가 주변 주민은 소음 굉음 분진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병천사-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후 선조들의 절의와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지은 병천사가 지금 훼손될 위기를  맏고 있는데 항일 역사 건물이 훼손된다니 말이 되는가

병천사(秉天祠)는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당이다. 1979년 8월 3일 광주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고려말의 충신인 정몽주를 비롯하여 지용기·정충신·지계최·지여해 등을 모시는 사당이다.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후 선조들의 절의와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이 지방 세력가인 지응형이 1924년에 지은 것이다.
경내에는 사당·영당·동재·서재·강당·전사실·내삼문·원직사 등이 있는데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을 요하는 강당 1동만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두었고 앙쪽은 방을 들였다.
병천사는 서원과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규모가 큰 사당건축이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 1924년에 건립된 충주지씨(忠州池氏)들의 서원이자 사우(祠宇)이다. 일제강점기 때 충주지씨들이 호국선현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 고려 말 공신 지용기(池湧奇), 조선조 공신 정충신(鄭忠信), 병자호란 때 활약한 지여해(池汝海)·지계최(池繼凗) 등 5인을 향사하여 왔는데, 1924년 지응현(池應鉉)이 이들을 배향하고 영정을 봉안하는 서원을 지었다.
병천사는 1927년 건축공사를 시작하여 1932년에 완공되었는데. ‘천리(天理)를 병집(秉執)한다’는 뜻에서 ‘秉天祠’라 하며 서원의 역할을 겸하였다. 건립 초기의 입지형태는 문중 소유의 「병천사산도(秉天祠山圖)」에 잘 나타나 있다. 앞뒤의 죽림(竹林)과 연못을 배경으로 신문(神門) 1동과 병천사 현전(賢殿) 1동, 영당(影堂) 1동, 존심당(存心堂) 1동, 동재(東齋) 1동, 서재(西齋) 1동, 거경재(居敬齋) 1동이 자리잡고 있다.
사우는 건좌손향축(乾坐巽向軸)을 중심으로, 위쪽에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역(祠廟域)과 아래쪽에 교육하는 강학역(講學域)을 두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기본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사묘역은 병천사 현전을 중심으로 앞에 신문이 자리잡고, 신문 앞에는 사적비(事蹟碑)와 묘력비(廟歷碑)가 있다.
현전 오른쪽에는 영당과 문이 현전과 나란히 위치한다. 강학역은 동재인 숭인재(崇仁齋)와 서재인 집의재(集義齋)가 좌우에 자리잡고, 병천사와 마주보며 강당인 존심당이 위치하며, 존심당 오른편에는 사우의 대문격인 광제문(光霽門)이 있다.
병천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후툇간을 두고 있으며, 간살 없이 통간을 제향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5량가구를 얹고 방풍판(防風板)을 단 고기와의 팔작집으로 내일출목으로 3익공포를 두고 있으며, 외부 의장물에는 긋기단청, 내부에는 금단청을 위주로 하고 있다.

병천사-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후 선조들의 절의와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지은 병천사가 지금 훼손될 위기를  맏고 있는데 항일 역사 건물이 훼손된다니 말이 되는가
부근에 모건설회사에서  12층 이상의 아파트를 건축하고 있어 훼손이 우려된다 고층의 건물로 일조권이 침해되면 한옥의 부식 및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며 지금은 주변 거주민들은 분진, 소음 굉음등 시달려 행복추구권이 박탈되어 무더운 날씨에도 문을 닫고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다. 문화재청을 비롯하여 관계당국은 어떤 사유로 문화재 바로 옆에 고층의 아파트신축을 허가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