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매일 숭고한 기도·…수험생보다 더 간절했다
  전체메뉴
부모들 매일 숭고한 기도·…수험생보다 더 간절했다
절에서 성당에서 수능 기원 예불·미사…광주 학부모들의 마음은
추위 속에도 무각사 찾은 80여명 “하루도 빠짐없이 백일기도 올렸다”
자식·손자 위해 서산동성당서도 기도…“내 정성 닿아 실력 발휘하길”
2025년 11월 12일(수) 20:15
수능을 하루 앞둔 12일 오전 10시께 광주시 서구 쌍촌동 무각사에서 자녀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이 예불을 올리고 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12일 오전, 광주시 곳곳의 법당과 성당 등지에는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기도 소리가 이어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를 올리고, 숨이 차고 무릎이 아릴 만큼 절을 하는 이들 학부모들의 뒷모습에서는 자녀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기를, 준비해 왔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날 광주시 서구 쌍촌동 무각사에는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지난 8월 6일부터 ‘수능 예불(대학입시 수능 백일기도 봉행)’을 이어오고 있다.

학부모들은 오전 8시 30분께, 체감기온이 5도 안팎으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도 옷을 겹겹이 껴 입고, 염주를 손에 꼭 쥐고 법당을 찾아왔다. 향 냄새가 은은히 퍼진 법당 안에는 어느새 80여명의 학부모들이 찾아와 1층 지장전과 2층 대적광전을 가득 채웠다.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금강반야바라밀경’ 구절이 1시간 30여분 동안 법당을 메우는 사이, 학부모들은 두 손을 모은 채 낮은 소리로 기도문을 읊었다. 일부 부모들은 방석 앞에 자녀들의 증명사진을 함께 두고 한시간이 넘도록 절을 하고 일어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목탁 소리와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한 박자에 맞춰 이어졌고 부모들은 무릎과 허리가 저리는 고통에도 누구 하나 힘든 표정없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절을 올리기 어려운 고령의 노인들은 법당 뒤편 의자에 앉아 기도문을 조용히 읊조렸다.

예불이 끝난 뒤에도 일부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주지스님을 붙들고 아이의 진로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불상 앞에서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는 기도를 올리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재수 중인 큰아들과 고3 둘째를 위해 무각사를 찾은 조미남(여·51)씨는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린 채 오래도록 법당에 앉아 있었다.

조씨는 “처음엔 내가 원하는 대학을 바라며 기도했었지만,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며 “아들들이 준비했던 만큼 충실하게 시험을 치르고, 혹여나 실수하더라도 그것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담담하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법당 구석에서 절을 이어가던 박영애(여·68)씨는 손자의 증명사진이 붙은 노란 기도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박씨는 “첫 손주라 애정이 남달라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기도했다”며 “다리가 아파도 내 새끼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웃었다.

지하철 역무원으로 근무하는 한지운(여·54)씨는 3교대 근무의 바쁜 일정 속 틈을 내 무각사를 찾았다.

한씨는 “오늘은 아이가 혹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며 “아이 인생에서 어쩌면 처음 마주하는 큰 산 앞에서 저도 나도 긴장되지만, 가족이 항상 곁에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이날 무각사에서 수능기도회를 집회한 청학스님은 “80여 명의 학부모가 모여 100일 기도를 이어가는 모습에서 자녀를 향한 깊은 사랑과 염원이 느껴졌다”며 “부모의 정성과 마음이 닿아 수험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성당에서도 미사 시간에 맞춰 자녀와 손주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오전 10시께 광주시 북구 오치동 천주교서산동성당에는 평일 미사를 드리러 온 신자들은 성전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앉아 간절히 기도했다.

서순초(여·79)씨는 수험생인 손주를 위해 올 한 해 매일 기도했고, 특히 수능을 앞두고서는 ‘9일 기도’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서 씨는 “손주가 태어나자마자 광주 집도 남편도 다 놔두고 서울로 올라가서 5년 동안 직접 내 손으로 키웠던 기억이 난다”며 “아기 때 모습이 눈에 한데 벌써 다 커서 큰 시험을 치른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서 씨는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은총으로 따뜻하게 보살펴 달라. 긴장하지 말고 아는대로 잘 풀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손자가 목표로 하는 의과대학에 들어가면 정말 바랄 게 없겠다. 내일도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오치동에 사는 70대 A씨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A씨는 “손주가 부담될까봐 잘 보라는 말도, 끝나고 시험 잘 봤냐는 말도 쉽게 꺼낼 수 없겠지만 주말에 함께 밥 한끼라도 먹으면서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할머니로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한편, 천주교산수동성당, 지산동성당, 남동성당 등은 수능 전날인 12일 저녁 7시 또는 7시 30분께 수험생을 위한 저녁 미사를 진행했다.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오늘 수능…광주·전남 3만2683명 응시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