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주민들이 함께 감정을 기록하고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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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주민들이 함께 감정을 기록하고 나누다
동명동 ‘여행자의 ZIP단ZI성’ 신춘문예
주제부터 심사까지 당일 결정 ‘이색’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글쓰기 참여
8~10월 공모 예정, 11월 ‘문집’ 출간
2025년 07월 06일(일) 19:10
광주 동구 동명동 여행자의 집(ZIP)에서 지난 5일 ‘여행자의 ZIP단ZI성’ 신춘문예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글을 쓰는 모습.<여행자의집 제공>
“내 모든 고민을 안아주는 곳이 있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자퇴를 고민할 때, 쥐뿔도 없는 나는 왜 이리 멍청하기까지 한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집을 나와 근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중략) 어디에서 시작했더라도 나에게도 떠나는 여행, 그 끝에는 고려인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뭐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비로소 이해받는 곳, 가장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가장 공존하는 곳”(박지원,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중 일부)

광주 동구 동명동 ‘여행자의 집(ZIP)’에서 지난 5일 오후 4시, 이색적인 신춘문예가 열렸다. 이름하여 ‘여행자의 ZIP단ZI성’. 동명동을 찾은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한 자리에 모여 감정을 기록하고 나누는 이 행사에서는 주제 제시부터 글쓰기·심사·낭독까지 모든 과정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제는 ‘나만 알고 싶은 광주의 여행지’. 찜통더위 속에서도 책과 글을 사랑하는 3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광주는 물론 서울과 인천, 경남 진주, 화순 등에서 온 참가자들은 작은 캠핑 의자에 앉아, 클립보드를 무릎에 두고 사색에 잠겼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부터 흰 머리 희끗한 노인까지, 다채로운 얼굴들이 하나둘 종이 위에 추억을 그려냈다. 어등산 마당바위 계곡에서의 어린 시절, 전일빌딩245 전시장에서의 깊은 울림, 캠핑장에서의 즐거웠던 추억. 각자의 ‘광주’가 종이 위에 되살아났다.

<>직장 생활로 광주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40대 나의성 씨는 이날 신춘문예에 참여한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여행지로서의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다. “광주는 작고 소박해서 오히려 매력적인 도시예요. 부산에선 퇴근하고 어딜 가려면 멀어 포기하게 되는데, 광주는 30분에서 1시간이면 어디든 닿을 수 있죠.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나들이가 가능하다는 점이 좋아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한 짧은 소설을 써냈다. 부산 토박이였던 주인공이 ‘바다 없는 노잼 도시’라며 광주에 좌절하지만, 운림동에 흐르는 개울, 무등산의 주상절리, 5·18 민주광장의 분수대에서 ‘숨겨진 바다’를 발견하며 광주를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날 신춘문예에서 1등의 영예는 광주교육대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원 씨에게 돌아갔다. 광산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소재로 한 에세이로 따뜻한 시선을 전했다. 어린 시절, 외국어 간판과 낯선 풍경이 가득한 그곳은 “그런 데 가지 마라”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두렵고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본으로의 여행 이후 박 씨는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사를 맡은 신헌창 독립서점 ‘책과 생활’ 대표와 동화 ‘우리가 다른 우주에서 만나면’의 전여울 작가는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점, 그리고 도시를 따뜻하게 포착한 작가의 감수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박 씨는 “친구와 기분 전환 삼아 참여했는데 큰 상을 받게 돼 얼떨떨하다”며 “평소 시 쓰기를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이어가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행사를 공동 주관한 1인 출판사 ‘노바운더리’ 백수지 대표는 “지난해 열린 ‘동명커피산책 신춘문예’가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었다. 글을 쓰고 공유하려는 시민들의 열정을 보고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는 바닷가나 유명 관광지는 없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을 따뜻한 장소가 많은 도시”라며 “이번 신춘문예가 참가자들 각자에게 그런 인연과 장소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행자의 ZIP단ZI성’ 신춘문예는 오는 8~9월 온라인 공모와 10월 오프라인 공모로 이어질 예정이다. 수상자에게는 다양한 상품이 제공되며, 우수작은 11월께 ‘여행자의 문집(ZIP)’으로 엮여 출간될 예정이다. 향후 노바운더리와의 협업을 통한 정식 출판의 기회도 열려 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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