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때로는 빈 둥지 같은 내 눈동자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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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때로는 빈 둥지 같은 내 눈동자를 닮아간다.”
‘시산맥’ 대표 문정영 시인 시집 ‘술의 둠스데이’ 펴내
60여 명 시인 비롯해 평론가 감상글 게재 ‘눈길’
동주문학상 운영, ‘웹진시산맥’ 발행도
2024년 09월 30일(월) 18:45
문정영 시인(‘시산맥’ 대표)
“제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4차혁명, 지구의 기후환경 등의 소재를 모티브로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투영했습니다.”

시 전문지 ‘시산맥’ 대표이자 동주문학상 대표인 문정영 시인이 7번째 시집 ‘술의 둠스데이’(달을 쏘다)를 펴냈다.

“삶의 찰나를 응시하며 쓴 서정적 이야기다. 혼잣말이다. 따뜻한 물음이고 뼈 아픈 실언이다”라는 장석주 시인의 평처럼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와 감성으로 삶의 속내를 풀어낸다.

3년 만에 펴낸 작품집은 체험이나 매체, 책에서 얻은 간접 체험을 현상화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출간 배경을 묻자 문 대표는 “3년마다 시집을 내기로 약속했는데 이는 시를 꾸준하게 쓰자는 저하고의 약속”이라고 했다.

시 전문지를 발간하고 동주문학상을 운영하는 데 에너지를 소진한다면 자칫 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을 거였다. 시인은 시를 씀으로써 존재하고, 시를 통해서만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

‘술의 둠스데이’
이번 시집에는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40점이 수록돼 있다. 이전 시집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해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대신 문 시인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60여 명 시인을 비롯해 평론가의 감상을 게재했다.

사실 지나치게 어려운 해설은 시를 애호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를 발한다. 정치하면서도 난해한 이론에 대입한 해설도 필요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시를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시집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혜미 시인은 이번 시집을 이렇게 감상했다. “곧고 순일한 마음은 멀리, 또 깊이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문정영 시인에게서 배웠다…. 시인의 성정을 닮아 편안하고 선선하여서, 곁에 두고 오래 마음을 기대고 싶은 시집이다.”

관조와 서정성, 순일한 마음이 시집 ‘술의 둠스데이’를 관통한다. 단단하고 다정한, 어찌 보면 엇갈리는 감성일 테지만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그러한 마음과 시선이 응결된 터라 적절한 긴장과 촉촉한 물기를 느낄 수 있다.

문 대표는 “60여 명의 시인, 평론가께서 짧은 감상글을 낮은음자리처럼 보내오셨다. 문장의 그늘까지 아름답게 파헤쳐졌다. 감사하다”며 “슬픔도 때로는 빈 둥지 같은 내 눈동자를 닮아간다.” 이번 생에서의 일복이 조각칼로 하나씩 나뉘는 순간에 쓴 작품들이다”고 ‘시인의 말’을 통해 밝혔다.

갈수록 문학 출판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문 시인은 꿋꿋이 시 전문지를 발행해오고 있다. ‘시산맥’은 지난 2000년 온라인으로 시작해 많은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다수의 회원들이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취지다.

“시는 문학의 꽃입니다. 단지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의 내면의 갈등이 심해진 이후, 그것을 시를 통해 드러낼 때, 시가 어려워지고 독자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진짜 좋은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가 있는 시라고 봅니다. 그래서 시인들이 다양하게 자신만의 시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문 대표는 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문학하기가 어려운 시대라고들 하지만 본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읽혔다. ‘문학의 꽃’인 시가 어려움 없이 핀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시를 쓰랴, 시인을 발굴하랴, 시 전문지를 발간하랴, 바쁜 와중에도 그는 수년 간 윤동주 시인의 정신을 기리는 ‘동주문학상’을 운영해오고 있다. 광주일보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동주문학상은 지자체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만들어 시상한다. “우리나라 많은 상들이 정부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음에 반해 시인들의 자발적인 펀딩을 통해 조성된 상금으로 운영한다”는 점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 정신에도 부합한다.

문 시인의 고향은 장흥이다. 그는 “바다와 강과 산이 함께하는 맑은 곳”이라고 했다. 일찍 고향을 떠나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이후 서울로 왔지만 “시의 서정은 그런 맑은 고향의 정서이며 부드러움”이라고 했다.

특히 장흥은 내로라하는 소설가와 시인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아마도 그런 정서가 뛰어난 작품으로 승화됐을 것이다.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그는 “기후환경을 위해 웹진 ‘시산맥’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를 잘라 만든 종이책을 언제까지 발간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해외에도 시산맥 회원들이 많은 만큼 ‘시산맥 지구별 수비대’를 통해 기후환경 개선을 위해 작은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2025년에는 ‘어린이 백일장’을 개최, 초등학생에게도 기후환경 문제를 알리고 실천 방안을 모색할 생각이에요. 또 하나,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개방돼 시인들과 함께 중국 연변 명동촌도 들르고, 윤동주 시인 묘지 참배도 하고 싶습니다. 여러번 다녀왔지만 꼭 한번 더 가보고 싶어요.”

한편 문 시인은 건국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꽃들의 이별법’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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