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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 지음
예술가들 삶 이후의 풍경, 영원한 거처를 찾아서
2024년 06월 14일(금) 00:00
이들은 누구일까. 살아서는 서로 경어를 사용했으며 한집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러나 죽어서는 하나의 묘석 아래 잠들어 있다. 아니 묶여 있다. 호텔에 숙박할 때면 각자 방을 얻었으며, 같은 구역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흥미로운 것은 각자 연인들을 거느리며 51년간 동거관계를 유지했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다. 사르트르 사상의 골자를 이루는 것은 실존과 고통, 불안, 참여(앙가주망)다. 75년의 생애 동안 그는 철학자, 소설가, 평론가, 극작가, 거리의 투사의 삶을 살았다. 철학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제2의 성’을 썼지만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이었다.

2023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합장묘 전경.
몽파르나스 묘지 초입, 제20구역에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잠들어 있다. 사르트르가 묻힌 지 6년 후, 생을 마친 보부아르가 합장됐다.

함정임 소설가가 청춘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가들의 묘지 순례기를 한권의 책에 담았다.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는 저자가 30대를 앞두고 지중해 해변에 잠들어 있는 폴 발레리의 묘지를 찾아간 이후 32년간 지속해온 예술가들의 묘지 순례에 관한 에세이다.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는 본업인 소설 쓰기와 연구 외에도 틈틈이 여행을 다녔고 이를 토대로 ‘소설가의 여행법’,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등을 펴내기도 했다. 이번 책은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대학시절 불문학을 공부했던 작가의 지적 편련과 문학에 대한 열정 등을 담고 있다.

책에서는 샤를 보들레르, 아르튀르 랭보, 폴 발레리, 오노레 드 발자크, 스탕달, 빅토르 위고,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르셀 프루스트, 레프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등의 묘지 순례기를 만날 수 있다. 문인 외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르크 샤갈, 반 고흐와 테오 등 화가들 그리고 베를린 유대인 희생자들의 묘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보들레르는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35세였던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이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영혼은 금이 가고’ 만다. 예술가에게 어머니는 다양한 의미로 기호화된다. 숭배와 사랑의 대상이자 여성성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재혼은 보들레르에게는 낙원을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은 절체절명의 사건이었다.

보들레르는 의부의 가족묘에 어머니와 함께 안치돼 있다.
보들레르는 몽파르나스 묘지 6구역에 잠들어 있으며, 26구역과 27구역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어머니의 재혼한 집안 가족묘에 안치된 보들레르는 생전에 “죽어서 남들의 눈물 빌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 불러 쪼아 먹히”고 싶다고 했었다.

트랑스베르살 길 제12구역에는 아일랜드인 사뮈엘 베케트가 잠들어 있다. 베케트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많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라 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겠다. 그의 언어는 부조리한 세계를 표방하며 의미하려는 경향을 무화해버리는 특징이 있다. 평자들은 그가 파리에서 출생한 프랑스인이었다면 언어가 달라졌을 거라고 얘기한다. 그의 언어는 이방인이라는 자의식이 가져온 새로운 언어의 성채였던 셈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눈을 감은 수전 손택이 잠들어 있는 곳은 의외로 파리다. 백혈병으로 숨진 그녀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에게 파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것도 베케트 가까이에 묻히고 싶다고 했는데 살아 생전 그녀는 열렬한 베케트 추종자였다.

또한 책에는 국민적 영웅 빅토르 위고와 거짓된 권력과의 투쟁을 주창했던 에밀 졸라가 잠든 국립묘지 팡테옹에 관한 내용도 있다. 아울러 고전소설 양식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던 발자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프루스트, 샹송의 여왕이자 프랑스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영면처인 페르 라셰즈 묘지 이야기도 기술돼 있다.

한편 책에는 함 작가가 직접 찍은 다채로운 사진도 수록돼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현암사·2만9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