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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못 구한 죄책감에 악몽 여전…다신 이런 참사 없어야”
‘학동 참사’ 3주기…당시 54번 버스기사 인터뷰
골절·뇌출혈로 6개월 치료…정신적 고통 커 2년 만에 운전대 잡아
우리사회 안전불감증 여전…길 가다 큰소리 나면 지금도 깜짝 놀라
2024년 06월 06일(목) 19:30
광주 학동 참사 3주기를 사흘 앞둔 6일 광주시 북구 각화정수장에 당시 사고로 매몰됐던 운림54번 시내버스가 처참한 모습으로 보관되고 있다. /나명주기자mjna@kwangju.co.kr
광주시 동구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학동 참사) 3주기를 맞았으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PTSD(트라우마·후유증)로 그 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동참사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 학동참사 후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절규한다.

학동 참사 당시 사고 버스인 54번 시내버스를 운행했던 버스 기사 A(60)씨는 6일 광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도 사고 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렵사리 말문을 연 그는 ‘잊혀지고 싶다’며 사진 촬영은 거부했다.

A씨는 2021년 6월 발생한 학동참사로 6개월여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상반신 골절과 뇌출혈 등 부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당시 철거 중인 건물 잔해가 정류장에 도착한 54번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그는 참사 3년이 지난 현재 거동에 불편한 점은 없으나, 정신적인 고통이 더 깊고 크다고 말했다.

A씨는 “나라나 지자체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알려 온 적도 없고, 스스로도 치료를 받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사실 A씨는 지금도 그 날의 기억과 싸우고 있었다.

사고 순간이 문득 문득 떠오르고, 길을 가다 큰 소리 나거나 무엇인가 갑자기 다가온다고 느끼면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A씨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꾸준히 등산을 하며 몸을 움직이고, 주거지도 광주에서 전남 지역으로 옮겼다”며 “2년여동안 운전대도 못 잡았다가 최근 겨우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년 넘게 시내버스를 몰아왔던 그였지만, 본업에 복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는 ‘치료를 다 받고 돌아오라’고 배려했으나, 업무 공백이 길어지면서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해부터 다시 시내버스 운전을 시작했다. A씨는 “처음에는 다시는 운전을 못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으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몸이 알아서 기억하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참사 현장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학동4구역 사고 현장에서는 매년 6월 9일 추모식이 열렸으나, A씨는 심적인 어려움으로 절대 참석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사고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싫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 승객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지은 기분이 든다”며 “참사현장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우리사회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사고 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없다”고 개탄했다.

학동 참사는 공사현장의 고질적인 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병폐가 원인으로 철거 계획서를 따르지 않고 건물 외벽강도를 무시한 채 철거 작업을 하는 등의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진 참사로 남았다. 참사 이후로도 화정동 신축아파트 공사 현장 붕괴 사고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 등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가 이어졌다.

A씨는 “국가든, 지자체든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면서 “단지 머릿속에서 (참사 기억이) 깨끗이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편 오는 9일 광주시 동구청에서는 사고 유가족·피해자를 비롯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거행한다.

같은 날 추모식에 앞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생명안전버스’ 선포식을 열 계획이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 인천 인현동 화재, 대구지하철 화재,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등 8개 참사 피해자들이 설립한 연대 단체다.

연대는 이날 추모식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고 학동 참사 피해자의 신체·심리·사회적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피해 구제 대책 마련을 요구할 예정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