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소설가 김탁환 “곡성 정해박해를 모티브로 ‘다른 세상’ 꿈꿨던 이들의 꿈과 사랑 그렸죠”
장편 ‘사랑과 혁명’으로 제27회 가톨릭문학상 수상
2021년 곡성 정착 이후 첫 장편…생태 활동·마을 책방지기도
2024년 04월 21일(일) 15:00
김탁환 작가가 곡성 정해박해를 모티브로 쓴 장편소설 ‘사랑과 혁명’으로 제27회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주일보 자료>
“작가라면 신과 인간의 문제는 큰 화두 가운데 하나다. 곡성과 인연을 맺으며 ‘정해박해’를 알게 됐는데 언젠가 소설로 형상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827년 곡성에서 발발한 천주교 박해인 ‘정해박해’를 다룬 김탁환 작가의 장편 ‘사랑과 혁명’(전 3권·해냄)이 제27회 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 작가는 통화에서 “정해박해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오랫동안 잊힌 역사로 남아 있었다”며 “곡성에서 시작된 박해가 한양까지 확산해 많은 이들이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작가에 따르면 500여 명 교인들이 체포되고 무자비한 고문에 처해졌다.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거나 투옥되는 것은 야만의 역사에 다름아니다.

경기도 용인의 모 완독모임 단체를 만나러 간다는 작가는 “3권이나 되는 분량을 읽은 독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해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이면 간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경남 밀양에 다녀왔다며 한달에 한번 정도는 독자들 모임에 간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27회를 맞은 가톨릭문학상은 가톨릭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작품으로 발굴해 왔다. 가톨릭신문사가 제정 운영한다.

김산춘 신부, 구중서 평론가, 신달자 시인, 구자명 소설가, 우찬제 평론가 등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은 단지 정해박해 사건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천주교 순교사에서 머물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사랑 없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독자를 오래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지난 2018년 곡성과 첫 인연을 맺고 2021년 곡성에 내려와 터를 잡은 김탁환 작가에게 이번 수상작 ‘사랑과 혁명’은 남다른 작품이다.

특히 김 작가 숙소가 박해 사건 주요 공간인 곡성성당 바로 뒷마당과 이웃하고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곡성성당은 정해박해 진원지 옥터성지에 1958년 설립됐다.

감옥이 있던 자리에 성당이 세워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라는 성경 속 구절이 환기된다. ‘역사적인 공간’과 집이 인접해있다는 것은 생생한 현장감을 추동했을 것 같다. 이와 달리 혹여 근접성으로 상상력 제한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30권이 넘는 장편을 써온 작가의 내공에 비춰보면 그러한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터다. 집필실은 숙소에서 걸어서 40분 정도의 거리인 섬진강 인근에 있다. 작가는 집필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소설의 얼개를 그리고 인물들을 창조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곡성과의 인연이 닿은 후 일명 ‘사회파 소설’을 쓰면서 안전과 생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농촌으로 내려갈 마음을 굳혔던 터라, 그해 곡성에 내려간 기회에 곡성성당과 더불어 옹기 교우촌이 있던 당고개 덕실 마을 들을 둘러보게 됐다.”

소설은 ‘들녘’과 ‘아가다’의 사랑 이야기를 기본 모티브로 전개된다. 또한 옹기를 구우면서 마을공동체를 일군 천주교인들의 신앙과 당대의 역사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였다. 신유박해(1801년)와 을해박해(1815년)를 피해 내려온 천주교인들이 덕실마을과 미륵골 일대에 정착한 이후의 이야기들이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신분을 숨긴 채 옹기를 구워 팔며 교우촌(校友村)을 이뤘다.

작품에서는 곡성의 자연이 오롯이 담겨 남도의 풍광과 향토성이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곡성의 산빛은 물론 강바람, 새소리,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있어 곡성의 자연환경이 맘에 들었다”는 그는 마을활동이나 생태활동도 여느 지역에 비해 잘 되는 곳이라고 했다. 직접 농농사, 밭농사도 짓는다. 밭이 100평정도 되는데 ‘미실란’ 이동현 대표에게 배웠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 1권 ‘농부의 들녘’에는 이곳에서의 삶이 일정 부분 투영돼 있다.

작가는 ‘미실란’ 이동현 대표와 생태활동 등을 펼치며, 생태 워크숍을 비롯해 이야기 학교 등 주민을 위한 강의도 진행했다. 책을 토대로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고 마을 책방지기 역할도 하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그것도 연고지도 없는 곡성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소설 쓴다고 대학 교수도 그만두는 데 시골로 가는 것쯤이 무슨 대수인가 하는 눈치였다”며 작가는 덤덤하게 말했다. 언젠가는 전업작가의 길을 가리라는 것을 가족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저는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계간지에 단편을 내고 그것을 묶어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장편 소재를 찾고 그것에 3~4년 집중하는 편이죠.”

한편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석·박사 과정에서 고전소설을 공부했다. 해군사관학교, 건양대, 한남대, KAIST 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까지 31권의 장편, 3권의 단편, 3편의 장편동화를 썼다. 특히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로양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