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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아집 사이 - 유연재 사회부 기자
2023년 03월 22일(수) 20:30
21일 밤 9시 40분께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로부터 메일이 왔다. 이튿날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열기로 한 계엄군 증언회 ‘제2회 오늘의 증언이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가 돌연 취소됐다는 것이다.

부상자회는 행사 취소 이유를 ‘증언자의 부득이한 사유’라고만 공지했다. 행사 전날부터 기자들이 풀단(공동취재단)을 꾸리고 질문거리를 취합하면서 취재를 준비했는데 행사 수 시간 전에 취소 통보라니, 허탈함이 컸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당초 풀단을 구성하게 된 과정도 황당했다. 증언회 이틀 전인 20일 부상자회는 5·18 담당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증언자가 자신의 얼굴·신상 정보를 미디어에 노출하지 않고 싶어한다”면서 “취재 인원을 최소화할 필요가 생겼으니 참석 가능한 기자들에게는 저희쪽에서 별도로 연락드리겠다”고 통보했다.

계엄군 초청 행사에 찬·반이 극명히 갈리는 와중에 참석 기자까지 부상자회 측에서 입맛대로 선별하겠다니 기자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부상자회는 기자단과 논의를 한 끝에 기자단에서 선출한 풀단을 참석시키는 것으로 매듭 지었다.

부상자회·공로자회의 외골수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증언회에 앞서 지난 2월 19일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대국민 공동선언식’ 행사를 열 때부터 한결같았다.

당시 계엄군측의 사과도 없이, 광주시민 의견 수렴도 없이 ‘용서와 화해’를 강행한다며 시민사회단체 반발이 심하던 차였다. 행사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오히려 기자들이 “행사를 조금 미루더라도 시민들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 목소리를 전했지만, 두 단체는 완강하게 “결코 아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행사 이후 비판 기사가 쏟아지자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과 공로자회 정성국 회장은 돌연 모든 전화를 끊고 잠적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에야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장에서 다 말씀드리려고 전화를 안 받았다”며 변명했지만, “우리 두 단체가 5·18 진상규명을 이루겠다는 내용은 쏙 빼놓고 시민단체 반발 입장만 부각시켜 기사를 쓰더라”며 뒤끝(?)도 남겼다.

두 단체는 ‘화합’을 하겠다며 5·18 당시 계엄군을 광주로 초청했지만, 날이 갈수록 화합은커녕 오월단체와 시민단체, 기자단 간 분열만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 바탕에는 부상자회·공로자회의 ‘5·18 당사자만이 적통’이라는 비뚤어진 선민의식이 있다. 계엄군 초청 행사에 반대 의견을 내는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을 ‘선동꾼’으로 몰아세우고, 5·18행사위원회를 ‘불법 단체’라고 깎아내리는 등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공격적인 태도도 갈등을 키우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독단적인 모습은 현 정부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정부는 최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일명 ‘제3자 변제’로 해결하겠다는 방안을 강행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반대 목소리는 무시하고 ‘대승적 결단’이라고 포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지금의 부상자회·공로자회의 일방통행식 태도와 무서울 만큼 닮았다.

두 단체가 계엄군으로부터 역사적인 증언을 받아내더라도, 아집만을 앞세워 받아낸 증언은 그 진의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바, 어렵게 이끌어낸 계엄군의 증언이 빛바래지 않게 하려면 이제라도 광주 시민과 공감대를 만드는 일에도 힘써주길 바란다.

/유연재 사회부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