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박준채의 새로운 시 ‘제초소감’ 발굴
김정훈 교수,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소장 노트서 발견
“겨레의 단결·희망 호소”…日 시전문지에 소개 예정 ‘화제’
“겨레의 단결·희망 호소”…日 시전문지에 소개 예정 ‘화제’
![]() 박준채 |
나주 출신 박준채(1914~2001)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자 애국지사다. 광주고보 2학년재학시절인 1929년 10월 30일, 광주-나주간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하는데 의분을 참지 못하고 일본 중학생에 맞섰다. 당시 그의 의로운 행위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제 104주년 3·1절을 앞두고 겨레의 단결과 희망을 호소한 독립운동가 박준채의 새로운 시가 발굴돼 일본 시 전문지에 소개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김정훈 교수(전남과학대)가 박준채의 식민지기 작성 시 31편을 알려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번에 다시 김 교수가 관련 연구를 지속해오다 박준채가 1950년에 친필로 작성한 ‘제초소감(除初小感)’이라는 시를 발굴한 것. 이번 작품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소장 중인 박준채의 시 31편을 담은 원고 노트 사이에 쪽지 형태로 끼워져 있었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시와 사상’ 편집자로부터 박준채에 대한 시인론(3월호)을 의뢰받아 자료를 다시 살피며 집필하던 중에 노트 속에 끼워진 작품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원고가 실린 노트를 분석한 결과 박준채가 ‘나주댕기머리 사건’이 발발한 1929년~1940년까지 시 40편(현존 31편)을 집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한 바로는 50년에도 시를 집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북풍北風 불고 눈보라 치는 세상世相/ 우슴도 눈물도 업는 짙은 장막帳幕의/ 이 ‘아포리’를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나라 업는 민족民族의 서름이여/ 님 업는 이 땅! 이 겨레!/ 다 같이 힘차게 뭉처라! 굳세게!/ 정의正義는 승리勝利하나니/ 찬달 빛이는 창窓박으로/ 백팔百八의 종소리 사라지리라/ 이 강산江山에 새봄이 오면/ 썩은 고목枯木도 다시 싹이 트나니/ 배달의 아들 딸들아/ 함마를 억게에 힘차게 매고 싸우라!/ 일하라! 배우라!/ 미래未來의 새 삶을 위爲하여!
멀니서 들려오는 희망希望의 종소리/ 이땅의 겨레에게 자유自由를 주라/ 영원한 행복幸福을!”(1950, 12, 31. 淸溪莊에서 해촌海村)
박준채는 해방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항일 학생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당시를 회고하며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되새기고 다 같이 힘차게 뭉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미래의 새 삶을 위해’ 투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해방 이후 민족수난기인 6·25전쟁의 해에도 시 창작을 통해 광주학생운동을 돌이키며 민족의식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근심 어린 시선으로 현실을 주시하고 겨레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김정훈 교수는 일본 시 전문지 ‘시와 사상’ 3월호(3월 1일 발행) ‘시인론’란에 ‘역사적 인물 박준채의 시 발굴―소환되는 사건· 각인된 언어’라는 제목으로 독립운동가 박준채를 일본 독자에게 최초로 소개한다.
김 교수는 도입부에서 작년 10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명한 관장)과 박준채의 생가(남파고택)를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박준채를 거대한 항일 학생운동의 불씨를 지핀 장본인이자 한일의 역사를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상징적 존재라고 소개한다.
김교수는 본론에서 일본 독자들을 의식해 박준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1937년의 제석(除夕)’과 ‘촌감(寸感)’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1937년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에서 황민화 교육을 강화하며 조선의 병참 기지화를 노골적으로 강행하던 시기이다.
박준채가 이듬해인 38년 집필한 ‘촌감’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학생운동으로 희생된 동료와 선배의 넋을 위령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박준채는 도쿄의 한복판에서 “불타는 이 심금/ 살펴 아시리라/ 미래에 살아든 그들의 꿈/ 가신님들에게/ 행운의 그날이 있도록/ 부디 전하여 주소서!”라고 노래했다.
김 교수는 “박준채는 한일의 어두운 시대를 돌이키게 하고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상징적 인물”이라며 “일본 독자들에게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박준채의 언어가 1929년 발생한 한일 학생들의 그 사건과 함께 새롭게 소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제 104주년 3·1절을 앞두고 겨레의 단결과 희망을 호소한 독립운동가 박준채의 새로운 시가 발굴돼 일본 시 전문지에 소개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시와 사상’ 편집자로부터 박준채에 대한 시인론(3월호)을 의뢰받아 자료를 다시 살피며 집필하던 중에 노트 속에 끼워진 작품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제초소감’ |
멀니서 들려오는 희망希望의 종소리/ 이땅의 겨레에게 자유自由를 주라/ 영원한 행복幸福을!”(1950, 12, 31. 淸溪莊에서 해촌海村)
박준채는 해방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항일 학생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당시를 회고하며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되새기고 다 같이 힘차게 뭉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미래의 새 삶을 위해’ 투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해방 이후 민족수난기인 6·25전쟁의 해에도 시 창작을 통해 광주학생운동을 돌이키며 민족의식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근심 어린 시선으로 현실을 주시하고 겨레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김정훈 교수는 일본 시 전문지 ‘시와 사상’ 3월호(3월 1일 발행) ‘시인론’란에 ‘역사적 인물 박준채의 시 발굴―소환되는 사건· 각인된 언어’라는 제목으로 독립운동가 박준채를 일본 독자에게 최초로 소개한다.
김 교수는 도입부에서 작년 10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명한 관장)과 박준채의 생가(남파고택)를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박준채를 거대한 항일 학생운동의 불씨를 지핀 장본인이자 한일의 역사를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상징적 존재라고 소개한다.
김교수는 본론에서 일본 독자들을 의식해 박준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1937년의 제석(除夕)’과 ‘촌감(寸感)’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1937년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에서 황민화 교육을 강화하며 조선의 병참 기지화를 노골적으로 강행하던 시기이다.
박준채가 이듬해인 38년 집필한 ‘촌감’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학생운동으로 희생된 동료와 선배의 넋을 위령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박준채는 도쿄의 한복판에서 “불타는 이 심금/ 살펴 아시리라/ 미래에 살아든 그들의 꿈/ 가신님들에게/ 행운의 그날이 있도록/ 부디 전하여 주소서!”라고 노래했다.
김 교수는 “박준채는 한일의 어두운 시대를 돌이키게 하고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상징적 인물”이라며 “일본 독자들에게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박준채의 언어가 1929년 발생한 한일 학생들의 그 사건과 함께 새롭게 소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