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 손원평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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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 손원평 옮김
열두 살 우크라이나 소녀가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
2023년 02월 26일(일) 10:00
“전쟁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그 비극의 후유증은 몇 세대에 걸쳐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파괴하고 탈색시킨다.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악인으로 그려지는 가부장조차, 실은 불과 몇 세대 위까지 끝없이 벌어진 전쟁 후유증의 피해자 혹은 피해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거나 인정하는 사람은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장편소설 ‘아몬드’의 작가이자 제주4·3문학상 수상자인 손원평의 말이다. 손 작가는 우크라이나의 열두 살 소녀가 쓴 소설을 번역하면서 “전쟁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그 말의 의미가 실감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열두 살 소녀가 풀어낸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는 러시아 침공 이후 긴박하고 가슴 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바 스칼레츠카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지금은 할머니와 아일랜드 더블린에 머물고 있다.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는 예바가 우크라이나에서 헝가리를 거쳐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번역은 언급한대로 손원평 소설가가 맡았다. 손 작가는 “안전한 집에서 예바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무척이나 큰 죄책감을 동반했다”며 “어쩌면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작업에 무모하게 뛰어든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도 머지않아, 혹은 언제든 전쟁의 관람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었다”고 말한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정확히 일 년이 되는 날이다. 2022년 2월 24일, ‘그 일’과 함께 12세 예바의 인생은 통째로 뒤흔들렸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가 침공할 거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현실화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4일 새벽 5시 10분. “쨍쨍 울리는 커다란 금속음에 갑자기 잠에서 깼다. 처음엔 폐차장에서 자동차를 부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우리집 근처엔 폐차장이 없기 때문이 사실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 때 그것이 폭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창가에 서서 러시아 국경 쪽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그래드 미사일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걸 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한 로켓이 집을 스치더니 무시무시하게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그 순간 내 심장은 얼어붙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해도 예바는 또래처럼 평범한 소녀였다.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영어를 배우는 아이였다. 그러나 2월 24일 그 날로 인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 소녀는 “고통과 공포로 몸과 마음이 마비될 때마다 앉아서 글을 썼다”며 “목적은 이 경험을 글로 적어서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에 내 어린 시절이 전쟁으로 어떻게 망가졌는지 돌아보고 기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중에 예바가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
예바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건 무고한 시민과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었다. “무자비하게 폭탄을 터뜨리며 수많은 도시를 지구상에서 지워 내고” 있는 러시아군의 행태는 범죄 그 자체였다. 소녀는 ‘전면전’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영혼에 공포를 각인시킨다고 말한다.

붕괴된 일상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아이들의 비단 같은 마음을 꺾지는 못한다. 친구가 보낸 영상을 보고 웃다가 침대에서 떨어질 뻔하거나 폭격을 당한 집에서 고양이 인형을 꺼냈다는 소식에 안도를 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바는 말한다. 폭발음, 폭격음은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준다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채 전쟁터에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은 아마도 전쟁이 끔찍하고 참혹하다고 말하겠지만, 전쟁이 가져오는 진정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을 거다.

<생각의힘·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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