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원초적 비디오 본색’-김미은 문화부장
2023년 01월 26일(목) 00:30
비디오 플레이어는 한때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우리 집의 경우 언제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여놓았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여점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감상했던 수많은 영화들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도 지금 장르 구별 없이 잡다하게 영화를 보는 습관은 이때 만들어진 건지도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음악 프로를 녹화해 수없이 돌려보며 ‘덕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비디오 플레이어 덕이었다.

그중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찾아 비디오 가게를 순례했던 일은 즐거운 추억 중 하나다. 당시 유명 체인이었던 ‘영화마을’ 각 지점을 찾아다니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이창’ 등 히치콕의 작품을 하나씩 대여해 감상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당시는 모두 ‘비디오 키드’였던 시절이다. ‘키노’ 등의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고 ‘필견 리스트’를 작성하곤 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전(2월 19일까지)에 가면 모두 자신만의 ‘비디오 키드’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비디오 대여점처럼 꾸며진 전시장을 채운 건 1980년대~2000년대까지 제작된 2만 7000점의 비디오 테이프와 ‘스크린’ ‘로드쇼’ 등 잡지, 영화 포스터, 전단지 등이다.

놀라운 점은 ‘일일 한 편씩 77년이 걸리는 비디오 컬렉션’이 단 ‘한 사람’의 수집품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20세기 소설 영화 독본’ 등을 꾸준히 열고 있는 광주 영화인 조대영 씨다. 전시 후에도 개인의 소장품에 머물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돼 쓰임새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비디오 룸에 들어서니 익숙한 장면과 음악이 흐른다. 주윤발의 코트와 장국영의 노래 ‘당년정’(當年情)을 만나는 ‘영웅본색’, 청순한 소피 마르소가 등장하는 ‘라붐’, 안부를 묻는 일본어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를 유명하게 만든 이와이 ㅅㅠㄴ지 감독의 ‘러브 레터’의 장면은 과거로의 초대장이다.

오는 27일(오후 3시)에는 ‘비디오 시대의 에로 영화를 말하다’를 주제로 봉만대 감독과 영화평론가 김형석의 대담이 펼쳐진다. 분명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에로 비디오’를 보던 추억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mekim@kwangju.co.kr